[한울안 칼럼]인문학의 근본, 마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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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칼럼]인문학의 근본, 마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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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2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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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철 교무(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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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퀴즈프로그램에 미국 청소년들의 우상인 한 연예인이 출연했다. 사회자가 묻는다. “부다페스트가 유럽 어느 나라 수도일까요?” “유럽이 나라이름 아닌가요?” 사회자가 정답을 말한다. “헝가리의 수도입니다.” “헝가리요? 터키는 들어봤어도 헝가리는 처음 들어봅니다.”
뉴욕의 어느 카페에서 두 남성이 진주만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이거 꼭 진주만 같이 생겼네.” “근데, 진주만이 뭐야?” “베트남이 그 곳에 폭격을 가했고 베트남 전쟁의 원인이 되었지.”(진주만은 일본이 폭격을 했고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음) 처음 진주만을 언급했던 남성이 의기양양하게 대답을 한다.
5~6년 전으로 기억한다. '지식에 대한 갈증을 잃어가고 있는 미국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즈에 실렸던 기사의 일부이다. 문제는 그들의 '무지'가 아니라, 이러한 무지를 문제 삼지 않는 그들의 '태도'임을 기사는 지적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대학에서조차 '잘 팔리는 것'만을 연구하고 가르치려 한다. 인문학 관련 학과의 폐과가 속출하고, 실용성과 자본의 논리가 정치, 경제 등의 사회 시스템은 물론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방식마저 장악한 지금 인문정신이란 하찮거나 사치스러운 것 둘 중 하나이다. 인간의 근원적 의미? 외계인의 언어일 뿐이다.

인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우리의 삶을 규명하는 일이며, 적어도 그러한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 인간과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초적인 덕목이다. 그래야만 이 세계와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답게'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은'인간학'이며 인문학의 위기는 인간의 위기, 곧 '삶의 위기'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인문학이 새롭게 환영 받는 분위기이다. '중세 철학자들을 나열한 후, 활동시기와 순서를 적으시오', ' 우리나라 위인 가운데 시대적 상황 때문에 저평가된 인물을 골라 서술하시오'대입 논술 고사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첨병이랄 수 있는 삼성과 현대의 최근 입사시험 문제이다.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의 공저자인 카토 교수는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관계를 자동차에 비유한다. “자동차가 연비가 높고 효율적으로 달리고 스피드가 있다는 것은 테크날러지이다. 그러나 어느 곳으로 떠날지 목적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문학적 교양이다.”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꿀 용의가 있다”고 했던 스티브 잡스와 “그리스 로마 고전을 라틴어 원전으로 읽는 것이 취미”라고 한 마크 주커버그가 최첨단 IT 기업인 애플과 페이스북을 성공시킨 것이나, 최고의 반도체 업체인 인텔사의 핵심부서인 '인텔랩'의 수장이 마르크스주의자인 문화인류학과 출신의 여성이고, 2011년 구글의 6,000명의 신입사원 중 5,000명이 경제, 경영을 제외한 순수 인문학 전공자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근본을 잘 다스려야 한다. 모든 학술의 근본은 마음공부라 하셨다. 인문정신이 과학기술의 바탕이 되듯이 인문정신을 바르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도학, 즉 탄탄한 마음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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