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의 동그라미, 궁극적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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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의 동그라미, 궁극적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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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3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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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작가의 ‘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 13-03 ㅣ 정법현 교도(북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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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절대성으로서의 사각형을 추구하는 한편 먹고 살기 위해 몬드리안은 거의 전생애에 걸쳐 도자기에 꽃을 그려야만 했다. 몬드라인의 사각형 속에 내재해 있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와'-'이다. '+'와'-'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사물을 구성하는 최초이며 최종적인 원리라는 것을 몬드리안은 알았다. 하지만'+'와'-'는 홀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다. 대립적이지만 반드시 함께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고, 그 본원적 요소가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물질로 전화되는 것이다. 몬드리안은 절대성을 너무 추구한 나머지 물질과 사물의 비대립적 요소, 즉 연기적 관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몬드리안은'+'와'-'를 꺾인 직각에서 만나게 했고, 그 만남을 사각형으로 확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몬드리안의 절대성은 물질에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보편적이고 정신적인 절대성을 추구하였으나 먹고 살기 위해 끊임없이 꽃과 나무를 그려야 했으니, 사물의 외형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하고 말았다. 1940년 뉴욕으로 옮겨간 이후에는 사각형에 음악적인 요소를 반영시켰다.

그리하여 뉴욕의 사각형들은 활동적이며 발랄해졌다. 그것은 유럽의 자연발생적 도시와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건축물의 배치로부터 몬드리안이 벗어났다는 것을 상징한다. 몬드리안은 사각형의 마천루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근대도시 뉴욕에 와서야 안심했다. 유럽의 비정형적인 상처로부터 벗어나 뉴욕의 사각형적인 풍경으로 들어와 안정된 것이다. 그 이후부터 몬드리안의 사각형은 경쾌해진다.

한 편, 절대주의의 가장 순수한 형태인 사각형을 그리던 칸딘스키는 점차 사각형을 감싸고 있는 가장자리 선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각형의 테두리라고 할 수 있는 '검은 가장자리선(1919년작)'은 어느 사이에 동그라미로 변하게 된다. 1916년 칸딘스키는 애인이며 동료화가인 뮌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림은 인생의 기쁨이나 혹은 우주의 행복을 표현해야 한다. 그러한 뜻을 살린 위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의 포부이다(김현화, 20세기 미술사, 추상미술의 창조와 발전, 한길아트, 1999, 145쪽)”라고 썼다.
1916년이라면 소태산이 대각한 그 해이다. 나는 정신개벽의 목표가 '인생의기쁨'이나 '우주의 행복'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슬픔이나 불행 그리고 우주의 지옥'으로 가자고 정신개벽을 하고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형태가 지니고 있는 내적 울림과 생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칸딘스키는 죽은 말, 죽은 닭, 죽은 기타처럼 죽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싶지 않았다.
살아있는 동그라미는 내면의 세계를 갖고 있으며 확장된 의미와 상징을 끊임없이 창조하면서 존재한다. 칸딘스키는 인간이 대량생산품과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성에 의거한 생의 힘을 갖는 존재이기를 소망했다. 즉 인간정신의 심화를 그려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원(圓)이었다. 칸딘스키는 사각형을감싸고 있던 검은 가장자리 선을 확장시켜 원을 만들어냈다. 칸딘스키의 원은 고정되어 있는 죽은 원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물방울처럼 우주와 모든 물질의 근본을 떠도는 존재의 원형이며 창조의 시작을 상징한다.

“인간은 육체적 삶 그 이상의 목표가 있다(데이비드 폰태너 지음, 공민희 옮김,「 상징의 모든 것」, 성균관대출판부,2011, 19쪽)”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와 예수와 소태산은 육체적 고행을 통해 인간이 가닿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추구했다.

존재하는 최고의 가치는 모두 추상의 가치이다. 물질로 충만한 삶이 궁극적 목표는 아니며, 세속의 날들 속에서 불멸하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영성의 삶인 것이다. 그 가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십자가며, 진리의 바퀴이고 원(圓)인 것이다.

그러기에 소태산이 금산사에서 그려낸 원은 물질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와 동시에 정신의 궁극적 만다라를 형상하고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이 동그라미야말로 세계적이며 보편적인 상징이 되었으며 누구나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상이다. 가히 부처의 마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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