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은 소태산의 몸이고, 소태산은 일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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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은 소태산의 몸이고, 소태산은 일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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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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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 작가의 ‘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 14-01 ㅣ 정법현 교도(북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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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은 원기4년 음력 팔월 스무 날에 팔산과 함께 모악산 아래 금산사에 도착하여 송대에 거처를 정했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짚신을 삼았다. 당시 금산사에는 미륵불로 환생하여 증산이 재림할 것이라는 믿음속에서 수많은 태을도 신자들이 모여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소태산은 그들과 달리 치성을 드리는게 아니라 묵묵히 짚신을 삼았다. 짚을 꼬고 엮는 과정을 지루하게 반복하여야 한 켤레의 신이 완성된다. 한 달 남짓 그 과정을 반복한 뒤에 소태산이 남긴 것이 바로 일원상이다.

디자인의 측면에서 보면, 일원상은 참으로 단순하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이지만, 그리스도교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는 고문기구였으며 사형대였다. 사람의 손바닥이며 발등에 대못을 박아 매달아 두고 천천히 죽어가도록 두는 도구가 바로 십자가다. 반면에 일원상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작은 단위의 소립자에서부터 여러개의 은하계가 합쳐진 우주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것들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상징한다. 원불교의 상징 이전에 우주만물의 가장 정확하고 단순한 원형이 일원상이다. 일원상의 원형(圓形)이야말로 칼 구스타프 융이 말한 원형(元型,archetype)인 것이다. 융은 원형을 '표현될 수 없는 근본적 구조' 라고 했다. 일원상은 '표현될 수 없는 근본적 구조'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하여 원형이 되었다. 그러한 일원상을 소태산은 어떻게 그렸을까? 그것은 지어낸 것이 아니고, 소태산의 대각에서 그리고 소태산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회화창작론에는 창작행위를 단계별로 밝히고 있는데, 첫 번째 단계가 숙간(熟看)이고 두 번째 단계는 응신(凝神)이며 마지막 단계는 전일(專 一)이라고 한다. 숙간은 '단순히 표현대상의 외형파악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궁극적 목적이 만물을 생성화육케 하는 창조력의 원리이며 상상력의 근원인 도를 구비하고 있는 참모습을 포착'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다.

응신은 '관조자의 마음을 대상물에 몰입시켜 상접된 상태'에서 '외물(外 物)의 형해(形骸)를 투과하고 생명 깊숙이 파고 들어 그 생명과 서로 만남으로써 관조자와 대상물 사이의 거리감이 해소되고 구획이 없어서 하나가 되는... 주객합일, 또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말한다'고 하였다. 또한 이규보는 '응신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관조자의 마음은 사적인 차원의 마음이 아니라, 이기적 아집과 차별적 인식에서 벗어난 무아의 마음, 즉 주관성과 선입견을 버린 허(虛)의 상태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전일이란 '마음으로 허의 세계를 구현하고 대상 깊숙이 침잠 몰입하여 거기에 내재해 있는 우주적 본체와 창생적 정신을 체득하고 그 참모습과 한 몸 으로 합쳐진 내적상태'를 가리키는 장자의 표현이다. 이규보는 그 상태를 '대나무는 당신의 몸이고 당신은 대나무' 라고 했다.

소태산은 금산사에 들어오기 전에 '한 두렷한 기틀'을 숙간하였을 터이고, 짚신을 삼으면서 만유의 체성과 응신하였고, 마침내 전일의 상태에서 일필로 일원상을 그렸다. 이규보의 말을 바꾸어 옮기자면 “일원상은 소태산의 몸이고, 소태산은 일원상이다.” 소태산이 일원상을 그려낸 방식을 이규보의 말을 빌려 더 설명하자면 '手爲心使常以心傳 心指手應, 손이 마음의 시키는 것에 따라 언제나 마음을 전하니 손은 마음의 지시에 따른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 다. 숙간하고 응신하며 전일된 상태에서 그려낸 일원상이기에 소태산은 그것을 부처의 심체라고 했던 것이다. 소태산의 손은 부처의 마음에 따라 움직였고, 그 마음에 따른 손이 청정법신불을 동그랗게 그려낸 것이다.

그러나 숙간과 응신과 전일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태산이 일원상을 쉽게 그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일원상에 대해 말하면서 몬드리안의 사각형과 칸딘스키의 원형을 굳이 설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몬드리안의 내부에서 사각형이 창조되고 그림으로 생성될 때까지 그는 끝없이 깨우치고자 노력했다. 물론 칸딘스키나 몬드리안보다 700년을 먼저 살았던 고려 시대의 이규보는 이미 '대상을 직접적 으로 꿰뚫어 관조하는 직관적 인식의 방법에 의해' '사물의 내적 본성'을 교 감하고 체득해야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태산은 대각 후에 무려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한 두렷한 기틀”을 숙간하고, 만유의 체성과 응신하였으며, 마침내 짚신을 삼으며 전일된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치열한 과정을 거친 뒤에야 일원상이 그려진 것이다. 부처의 마음을 그려내어 그것을 체성으로 삼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작은 따옴표 안의 문장들은 모두 홍선표 지음, 「고려시대의 회화이론」, 조선시대회화사론, 문예출 판사, 1999년, 175~183쪽 사이에서 인용하였고 문장이 안 되는 것은 수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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