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교사스페셜] “미륵이 짚신신고 법당 밖으로 나오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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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교사스페셜] “미륵이 짚신신고 법당 밖으로 나오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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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3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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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천 교무(교화훈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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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각(大覺)하고 기쁨이 충만하나 무 한히 외로웠다(心獨喜自負).

원기 원년(1916) 4월 28일 대종사 대각하였다. 이 깨달음, 충만한 이 기쁨을 혼자 주체할 수 없어 탄식하였다.

“소원성취 이 내 일을 어디가서 의논하며 어느 사람 알아볼까 쓸 곳이 전혀 없어 이리 가도 통곡 저리 가도 통곡 (탄식가)” “나 혼자만 좋으믄 먼 재민겨. 세상과 함께 좋아야제.”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더불어 이 기쁨을 함께 나눌까 궁리했다. (공동생일기념) 당신님은 도통을 하고 이걸 활용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먼저 세상을 제대로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2. 장보러 다니기 시작(최초법어)

세상을 관찰하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로 가야 한다. 구수미, 법성포, 영광, 무장, 백수 각지 장날 다니며 시국을 관망하고 돌아와 '최초법어'를 설했다. 그 내용 중에 “시대를 따라 학문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있다.

학문은 교법이다. 교법에는 시대정신이 있어야 한다. 시대에 맞는 교법이어야 한다. 1910년대의 교법이 2010년대 교법과 같겠는가. 그 근본이야 같겠지만 형태는 다르다. 교법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변화하고 신선해야 한다.

3. 숯 장사하여 방언공사 전개(공동작업, 동고동락)

대각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다. 장보러 다니면서 소문듣고 당시 유행하는 일인농장(日人農 場)의 간척공사 현장 둘러봐 일인들 한일합방 후 토지조사 사업하여 엄청난 토지 장악하여 대농장주(大農場主)가 되었다. 그것도 성차지 않아 조선총독부의 막강한 지원하에 서해안 일대 간척을 벌였다.

공사의 핵심 추진력은 막대한 자금과 그 일을 추진하는 단합력(인력)이 었다. 계속 장에 돌아다니며 물가의 추이를 지켜본 끝에 무엇이 가장 장사가 잘 될 것인가 파악(석유와 숯 폭등)했다. 일본이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여 군함, 대포 등 화력이 엄청 필요할 때라, 청나라의 산동 반도를 획득했다. 방언조합은 구수산 안통 숯을 다 사들여 좋은 금액에 매입했다. 소문이 좋게나 일 년만에 열 배 이익 남기니 정말로 통(通)을 했구나하고 사람들이 감탄했다.

방언공사를 하려면 먼저 둑을 쌓아야 할 축제선(築堤線)을 쳐야 한다. 당신님(소태산 대종사)이 직접 갯벌에 들어가 소나무 말뚝을 떡메로 쳐서 박고 새끼줄을 치고 갯막이(防堰) 공사를 시작한다.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뻘둑을 쌓아야 하므로 조합원 8명으로 벅찼다. 많을 때 50명의 인부를 쓰기도 하였다. 장산리에서 온 장정이 있었다. 그 장정은 일본 간척공사에 돈 벌러 갔다가 왜 놈들 짓거리에 배알이 틀려 길룡리 갯막이에 온 자로 언답 공사 경험도 있고 힘이 장사였다. 제 힘을 믿고 감독의 말을 듣지 않자, 대종사가 장정의 지게다리를 쳐 혼절시켰다는 위압적인 일화만 전한다.

대종사, 작대기 짚고 둑에 서서 감독만 한 게 아니다. 장정의 의기를 높이 사 함께 뻘짐지고 나르며, “자네가 최고네” 기운 북돋아 일등공신 만드는 감화력도 있다. 보통 일꾼은 찰진 뻘덩이를 세 덩이 지는데 장정은 다섯 덩이, 어떤 때는 열 덩이도 졌다. 대종사 직접 가래로 뻘흙을 두부 모 뜨듯이 퍼 바작(발채, 농기구의 일종)에 지고 뻘에 푹푹 빠지며 장단지에 퍼런 심줄이 돋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게 방언공사 당시의 실다운 당신님 면모이다.

도통(道通)하여 민중들 위에 군림하 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고락을 함께하여 26,000평 간척답을 확보했다. 보리밥 조밥 수수밥만 먹던 길룡리가 삼시세끼 쌀밥을 먹게 되었으니 이런 경사가 없다(農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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