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가습기 살균제로 죽은 딸, 가슴에 묻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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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가습기 살균제로 죽은 딸, 가슴에 묻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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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3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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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성 도무(원경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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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원, 1999년 11월 29일생, 2000년 3월 17일 사망, 생존 기간 110일, 사망원인은 원인 불명의 폐출혈, 또는 급성 폐렴.”

1997년 양산에 있는 여상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나는 도무 출가를 서원하며 영산성지고등학교로 왔다. 영산성지고등학교는 당시 정부 인가를 받지 않았고, 학교 뒤에 양계장을 만들어 거기서 나오는 달걀을 팔아 운영해가던 가난한 학교였다. 자퇴와 부적응을 경험한 학교 밖 아이들에게 체험학습 위주의 교육을 해나가던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였다.


영광으로 옮겨오기 이틀 전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 때가 1997년 2월 21일이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나는 다음 날 바로 영산 성지고등학교로 갔다. 얼굴이 부은 아내와 갓난아기를 두고 영광까지가는 길은 참 멀고 무거웠다. 식구들은 그 해 5월에야 영광으로 합류했다. 정부 지원이 없던 때라 급료 30만 원을 받고 두 아이를 길러야 하는 곤고한 삶의 시작이기도 했다.

나는 국어를 가르치며, 매일매일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들과 함께 버거운 교육활동을 해나갔다. 내 생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특별한 아이들과 만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일 년 후인 1998년, 영산성지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최초로 정부인가를 받은 6개의 대안교육 특성화학교가 출범했다.

1998년 한 해를 보내고 겨울 방학이 되자, 아내는 셋째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두 아이도 키우기 어려운 가난한 대안학교 교사임을 강조하며 반대했다. 게다가 온통 학교 학생들에게 정성을 쏟아야 하는 처지에 내 자식 교육은 도리어 부담이었던 때였다. 그래도 아내는 셋째를 낳으면 출가를 시키자며 계속 나를 설득했고, 결국 아이를 갖게 되었다. 인연 소산이었다.

딸 여원이는 그렇게 우리 집 셋째로 태어났다. 1999년 한 해를 오롯이 태중에 있다가 11월 29일에 세상과 만난 것이다. 이내 겨울 방학을 했고, 나는 방학 기간 내내 여원이와 함께 했다. 둘째 아이의 아기 시절을 보지 못한 나는 셋째 아이가 세상을 만난 첫 100일을 내 마음에 담기 위해 사택과 학교만을 왔다 갔다 하며 방학을 보냈다.

당시 학교 바로 뒤에 있던 사택은 남학생들이 사용하던 기숙사를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스티로폼 패널로 지은 조립식 집이라 많이 건조했다. 더구나 겨울이었다. 겨울에 갓난쟁이가 있는 조립식 집이라 당연히 습도 조절이 중요했다. 그래서 여원이 머리맡에는 겨울 석 달을 지내는 동안 내내 가습기가 돌아갔다.

아내는 텔레비전에서 가습기 살균제 광고를 보았다. 광고는 자주 등장했고, 물을 갈고 청소를 해주어야 하는 가습기에 인체에 무해하다는 살균제는 매우 편리하면서 유용해 보였다. 텔레비전 광고를 많이 하고 해로움이 전혀 없다 하는 데에 겨울 내내 가습기를 사용해야 하는 처지로서는 당연히 구매하여 아이의 건조한 호흡기를 적셔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트에 가서 손쉽게 구입했다. 옥시 제품이었다. 그리고 1~2일에 한 번꼴로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었다. 전보다 훨씬 안전한 수증기를 아이에게 보낸다는 안도감과 함께.

방학 동안 여원이는 잔기침을 하거나 얼굴이 붉어지며 캑캑 소리를 내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건 아기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가벼운 증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도리어 당시 6살과 3살이었던 큰 애와 둘째 애가 더 자주 아팠다. 주로 감기와 천식, 비염이었고 폐렴으로 입원한 적도 있었다. 자주 병원 치료를 받는 바람에 병원에 십일조를 한다고 할 정도였다. 거기에 비하면 외려 여원이는 건강했고, 또한 순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두 아이도 피해를 받았지만 이 아이들은 움직이고 활동하는 아이들이다. 밖에 놀러가기도 하고 어린이집에도 다녔기 때문에 잠 잘 때를 제외하고는 가습기 살균제에 덜 노출되었다. 그러나 갓난쟁이 여원이는 밖으로 안고 나가지 않으면 피할 수 없었고, 때는 겨울이라 실내에 주로 머물렀던 터여서 꼼짝없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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