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가습기 살균제로 죽은 딸, 가슴에 묻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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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가습기 살균제로 죽은 딸, 가슴에 묻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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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0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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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성 도무(원경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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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은 여원이 백일이었다. 그로부터 6일 후, 개학식과 입학식을 치르며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3월 13일 월요일 아침, 아내는 여원이가 평소와 다르게 마른기침을 하고 노인들 해소 끓는 소리를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데리고 갔다. 엄마의 직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광종합병원의 소아과 의사는 청진기를 가슴에 대어보더니 별 이상 없다고 했다. 약을 타서 사택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7시쯤에 여원이는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다. 아내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여원이가 숨을 못 쉬어요.” 나는 놀라서 교무실을 뛰쳐나갔고 사택 앞에서 아이를 안고 동동 구르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아이는 얼굴이 새파래져 있었고, 눈 주위가 붉었다. 끄윽끅, 숨 쉬려고 안간힘을 쓰는 소리를 냈다. 영광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이미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여원이를 진료했던 의사는 매우 다급해 하며 왜 이러지, 왜 이러지를 반복했다. 강제로 입을 벌리고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 그리곤 전남대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앰뷸런스를 타고 깜깜한 도로를 달렸다.

전남대병원 응급실은 환자들로 넘쳐났고, 겨우 병상을 받아 응급 치료를 했다. 폐에서 다량의 피가 나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폐출혈이었다. 여원이는 입원 다음날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엄마 아빠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눈을 감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입원한지 4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애가 왜 이러냐고 병원에 아무리 물어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건강하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숨을 못 쉬고 죽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왔는데도 100일 지난 아기의 돌연사를 도무지 모르겠다고했다. 나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망확인서에는 궁색하게 급성 폐렴이라고 사인을 기록했다. 열도 한 번 난 적 없고, 앓아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폐렴이란 말인가. 그리고 폐출혈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100일 동안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폐렴이며, 폐출혈로 호흡을 못하고 의식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죽는단 말인가.

나는 전남대병원에 시신 기증을 제의했다. 시신을 기증하면 아이의 주검을 더 값지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왜 죽었는지 사망 원인을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전남대병원은 거절했다. 왜 거절했는지도 모른다. 아쉬운 것은 혹 그때 시신을 기증받아 폐출혈의 원인을 만에 하나라도 규명할 수 있었다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이 조금이라도 밝혀졌다면, 그 뒤에 잇달았던 수많은 비극들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나는 아이가 입고 갈 수의를 가지러 집으로 왔다. 자정이 가까웠다. 일주일 가까이 비어있던 사택은 늪인 듯 가라앉아 있었다. 아이의 옷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좋은 옷을 고르고 방울모자도 하나 챙겼다. 비록 짧았지만 방학 내내 눈을 마주하고 알 수 없는 옹알이를 주고받으며 통통한 젖살을 어루만졌던 그 밀도 있는 시간들이 가슴을 쳤다.

다음날 영안실에 있던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방울모자를 씌운 채 삼밭재 오르는 어딘가에 묻고 내 가슴에도 묻었다. 아이의 시신을 내 무릎 위에 올리고 장지로 갈 때, 무릎 위로 전해지던 서늘한 영안실의 체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여원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아내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갑상선 항진증이 더욱 악화되었고,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려야 했다. 나 역시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 너무나 가까워,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가 아플 때마다 죽음의 두려움을 한동안 느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아픈 기억들은 점차 옅어졌지만 지금도 여중생들을 보면 우리 여원이도 살아있었으면 중학교를 다니겠지, 하며 그리워한다.

'안방의 세월호'라는 말처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장애를 입은 것이 알려지면서 여원이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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