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가습기 살균제로 죽은 딸, 가슴에 묻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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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가습기 살균제로 죽은 딸, 가슴에 묻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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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02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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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성 도무(원경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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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호흡기를 안전하게 적셔주기 위해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가습기 살인제'로 사용되어 도리어 사랑하는 자식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또 한 번 가슴을 후벼 팠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 애통한 비극과 절망은 정말 어떻게 다 보상 받아야 한단 말인가.

여원이는 2000년도에 사망하였으니 가습기 살균제 사고 시점을 앞으로 많이 당겨 잡을 수 있는 중요 사망자이다. 게다가 최연소 사망자인 여원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는 사실은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겨울 3개월을 꼬박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것 말고 다른 변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100일을 갓 지난 갓난쟁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피해자 신청을 하였더니 질병관리본부에서 내린 결정은 4등급이었다.

4등급은 '가능성 거의 없음'이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니, 무얼 보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인가. 아이가 사망한 병원에서 보내온 자료와 인터뷰 자료에 담긴 그 엄연한 사실이 보이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병리적 현상과 결과를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인가. 겨울 내내 가습기 살균제를 투여하여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비극을 몸소 겪었는데, 멀쩡하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호흡 곤란으로 의식을 잃고 죽었는데 얼마나 더 객관적이고 확고한 증거자료가 필요하단 말인가.

등급 판정은 흔히 폐 섬유화로 부르는 '소엽중심성 섬유화를 동반한 폐질환(이하 폐 섬유화)'을 기준으로 삼았다.(2014년 3월,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 의심 접수사례 조사 결과 보고서 31~32쪽) 폐 섬유화가 명확하면 1등급, 폐 섬유화와 연관이 높으면 2등급, 폐 섬유화와 거리가 멀거나 관련 없으면 3, 4등급이다.

이런 기준으로 그 수많은 피해자 가운데 겨우 3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였고, 그 중에 1,2등급은 168명이고, 3,4등급은 186명, 판정 불가가 7명이었다. 3,4등급은 조사 대상 중 51.5%를 차지하여 1,2등급보다 더 많았으며, 그 중에 사망자도 27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증상이 오로지, 확고하게,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균일하게 폐 섬유화 '한 가지 증상'으로만 드러날 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폐 섬유화만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양상의 전부라 할 수 있는가. 우리 몸은 유기적이므로 폐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기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연령에 따라, 성별에 따라, 건강상태에 따라, 사용 빈도에 따라 다르게 진행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이 폐 섬유화든, 폐출혈이든, 폐렴이든 이는 모두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사람의 폐 손상인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망가진 폐를 이식한 사람도 3등급을 받아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사망하고 4등급을 받은 어떤 유가족은 폐 손상 사망자 등급이 원래 4등급이라 여기고 있다가 그 4등급이 '가능성 거의 없음'등급임을 알고는 가슴에 원한을 쌓아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실질적인 피해자들이 어처구니없는 등급 판정으로 또다시 고통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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