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생사관生死觀의 이해와 공도자숭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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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생사관生死觀의 이해와 공도자숭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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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0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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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교당 영모전 입묘기념 특별기고 ㅣ 최도운 교무(재정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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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을 통하여 생사관념을
사람의 삶에서 죽음은 그 주체가 되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나의 관념을 이루고 있고, 이 관념의 가장 중핵(中核)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생사관(生死觀)이다. 인간의 삶의 방향로를 제시하기에 한 사회의 생사관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체계를 알아가는 척도이다. 그렇기에 장묘문화는 그 사회 또는 종교의 생사관을 통해 문화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사관의 근원은 인류의 공동생활과 관습이 시작되면서 죽음에 대한 의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각 시대마다, 지역마다, 인종마다, 민족마다, 신앙마다 각각 달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나름대로 그 해답을 찾아서 표현한 것은 각 민족이 지닌 창조 신화였고, 또 그들이 만든 수많은 무덤들이다. 그 무덤을 통하여 생사관념을 엿볼 수 있다.

# 유(儒)·불(佛)·도(道)의 생사관
1) 유교의 생사관
유가는 각종 의례와 예절 절차를 통해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게 하였다. 공자의 제자였던 안연(顔淵)의 죽음에 큰 곡소리로 울며 “그 사람을 위해 애통해 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 애통해 하겠는가”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발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죽음 앞에서만큼은 예를 세련되게 지키기 보다는 그 슬픔을 표출한다.
유가는 예를 통하여 삶을 의미있게만들고자 하였고 예(禮)를 통하여 사자(死者)를 삶의 영역에 남겨 두었고, 예를 통하여 사자와의 관계를 지속하였다. 이처럼 유가에게 있어서 죽음은 영원한 이별의 슬픔이지만 이별한 대상이 다른 세상으로 떠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치 생전처럼 우리와 함께 있으며 관계를 지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대 유가에서는 죽음이란 혼(魂)과 백(魄)이 분리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혼은 인간의 호흡 즉 내쉬고 들이쉬는 기이며, 백은 감각적 육체적 인간의 기를 말한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혼이백으로부터 분리되고 신체는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기(氣)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보는 유학에서는 영혼의 불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재언하자면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음양의 정기가 모여 물질을 만들고 죽는다는 것은 혼(魂)이 올라가고 맥(魄)이 내려가 흩어져 변하는 것이다.

2) 불교의 생사관
불교의 생사관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과 대만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은 불교가 비록 국교(國敎)가 아니라 할지라도 상장례를 대체로 불교식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 사찰에 가서 장례를 치루는 것이 일반화되어있다. 일본의 장례식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밀장(密葬)과 장례식이다. 밀장의 경우에는 5일장 내지 10일장이 있으며, 10일장의 경우 시신을 먼저 화장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할 수 있게끔 큰 회관이나 절에서 영가의 사진과 유골을 모셔두고 고별식을 한다.

일반 장례식은 절에서 영구차로 바로 화장터로 출발한다. 화장터에서 화장을 할 때 죽은 사람과 가까운 사람이 마지막까지 고인의 곁에서 함께 한다. 지금의 우리나라 화장 문화가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이어지고 있음을 짐작케한다.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를 신봉하는 대만의 경우 장례나 매장풍습은 성대한 장례(厚葬), 풍수개념에 기반한 매장과 남장(濫葬) 및 습골(拾骨), 가족 묘등을 그 특색으로 들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승려를 모시고 독경을 하는데 고인의 악령인 귀신을 물리치기 위함이고 저승에서 이용한다고 하는 종이돈과 옷, 모의 가옥을 태워 고인의 혼에게 바친다는 독특한 습관이 있다.
더 나아가 불교의 세계관은 힌두교의 그것과 유사한 순환론적인 윤회 전생설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피안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종이돈과 모의가옥을 혼에게 바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삼세를 통하여 윤회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비록 몸과 형태를 다르게 할 뿐 그 영식, 혼은 그 업에 따라 육도의 세계에 거래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3) 도교의 생사관
장자(莊子)가 생각한 죽음의 인식과 생사관을 통해 도교의 생사관을 알아보면 장자에 있어서 죽음의 원인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기가 흩어지는 자연사이고 인위적 작용에 의한 사고사이다. 자연사는 육체의 생명이 다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사고사는 외부의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장자는 과실 수를 인간의 삶과 비유하기도 하였다. 예를들어 조그마한 감나무에 처음으로 감이 열렸다. 하지만 감을 수확할 때 조심하지 않고 감을 잡아 당기면 감나무 가지가 찢겨져 감을 수확할 수는 있지만 감나무는 생장을 멈추고 죽게 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삶도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하는 사고사의 경우는 이와 같다고 말한다.

사고사가 아닌 경우는 죽음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주 일기(一氣)의 취산(聚散)작용에 기인한다. 우주 대자연은 기가 모임에 따라 천수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우주의 원기가 펴 나오는 것은(神伸)이고 죽음은 돌아가는 것(鬼歸)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기가 응취할 때 수명이 이미 정해져서 그 기가 흩어지면 죽는 것이며 그 기는 우주 대자연과 합해 지는 것이다. 대령(大靈)에 합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교에서는 장생불사를 꿈꾼다. 이는 흩어지는 기를 중지시키려는 것과 같다. 무위자연에의 견지에서 보면 이는 역행이며 세월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도를 거슬리는 행위에 따라 고통은 맞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고통은 도를 깨닫지 못하거나 거역함에 온 것이다. 장수를 위한 인위적 생명의 연장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으며 자연의 변화에 생을 맡은 채 시냇물처럼 물 흐르듯 살아가면 죽음을 맞이할 때 고통이 없지만 거스르면 고통이 따르고 마침내 죽음을 당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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