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칼럼] 깨달으려면 남을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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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칼럼] 깨달으려면 남을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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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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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철 교무(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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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셨고, '보시(자시 심으로 재산이나 불법을 베풂)'는 불교 인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강조하는 원불교에서도 정신, 육신, 물질로 이웃과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일은 교리의 핵심이 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베풀어야 할까? 우선 스스로가 행복해진다. 어려운 이를 도울 때 화가 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드는 사람은 없다. 물론'내가 이만큼 베풀었 다'는 관념과 상(相)이 없는 무상보시 (無相布施)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단순 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나 때로는 시 혜자로서의 우월감을 즐기는 향락적인 동기가 어느 정도 섞여있다 할지라도, 베풀지 않는 것보다 나쁠 까닭이 없다.

둘째, 복(福)을 받게 된다. 가는 것이 곧오는것이되고, 오는것이곧가는 것이되며, 주는사람이곧받는사람이 되고, 받는사람이곧주는사람이되는 것이 인과의 원리이다. 수도인이 구하 고자 하는 바는 지혜와 더불어 복이다. 주변을 보면, 복은 있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람도 있고, 지혜는 있지만 복이 부족한 사람들도 적지않다. 인과에 따르면 짓지 않은 복을 받을 수는 없다. 불 교인들이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복 많이 지으세요”하는 인사를 더 많이 주고받는 이유이다.

셋째, 지혜를 얻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완벽한 성품(불성)을 갖고 있지만, 무명과 욕심, 집착 등에 가려 어리석어 지는 것이다. 대종사께서 물었다.“저 등잔불이 그 광명은 사면을 다 밝히는데 어찌하여 제 밑은 저 같이 어두운고?” 제자 답하기를, “저 등불은 불빛이 위로 발하여 먼 곳을 밝히고 등대는 가까운데 있어서 아래를 어둡게 하오니, 이것을 비유하오면 혹 사람이 남의 허물은 잘 아나 저의 그름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나이다. 어찌하여 그런가하면, 사람이 남의 일을 볼 때에는 아무것도 거리낌이 없으므로 그 장단과 고저를 바로 비춰 볼 수 있사오나, 제가 저를 볼 때에는 항상 나라는 상(相)이 가운데 있어서 그 그림자가 지혜 광명을 덮으므로 그 시비를 제대로 알지 못 하나이다.”장기를 직접 둘 때보다 훈수를 둘 때 수가 더 잘 보이는 이치이다. 지혜를 가리는 구름 중 가장 걷어내기 어려운 것이 '자신'에 대한 집착, 즉 '아상(我相)'이다. 자신의 이해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일일수록 바로 보기가 쉽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성 자들이 '나'를 놓기 위해 강조한 것이 명상과 더불어 이웃과 세상에 대한 베풂이었다.
외람되지만, 몇 몇 기관들에 정기적으로 약간의 후원금을 내고 있고, 과외의 수입이라도 생기게 되면 보시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복을 짓겠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주된 목적은 지혜이다. 보시는 집착을 놓는데 도움이 되고, 집착을 내려놓은 만큼 온전하게 보고 듣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성불을 하려면 남을 도와야 한다는 성철스님의 말씀도 보시와 지혜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원불교에서는 경전을 '이해'가 아닌 '연습'하라고 가르친다. 연습이 없이는 어떠한 진리도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보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부분부터 연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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