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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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
  • 관리자
  • 승인 2016.09.2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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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78)ㅣ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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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마음공부 귀결은 공심입니다. 『불교정전』「사대강령」의 결론을 보면 “몰아 말하면 정각각정을 하고 지은보은을 하고 불교보급(불법활용)을 하는 것은 다 무아봉공을 하기 위함이니라.”라고 귀결하고 있습니다.
결국 마음공부하는 목적은 공익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공익심으로 열매 맺지 못한 마음공부는 아직 덜 익은 미진한 상태입니다. 그래서「일상수행의 요법」의 마지막에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로 끝맺음하는 것입니다.

# 보은과 봉공
봉공(奉公)은 공심입니다. 봉공은 보은의 사회적 버전입니다. 보은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밟아야 될 포괄적인 인간의 길이라면, 봉공은 사회적 관계에서 서로 협력하여 밟아가야 될 사회적 길입니다. 봉공은 즉 보은입니다.

사회적 관계는 혼자서만 잘 한다고 성공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집만 쾌적하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쾌적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집 주위가 오염되면 결국 자기집도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고 싶지만 사회의 구조가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지 못하는 구조라면 나의 자유와 권리도 침해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행복도 보장되어야 하며, 자신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유를 존중하는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만일 자신 혼자서 행복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는 착각일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만 해탈할 수 있다는 사고는 생각이 짧은 독선기신의 관견입니다.(서품 16장)
예를 들어, 길가에 돌부리가 있어 사람들이 가끔씩 걸려 넘어져 다치는 경우, 어떤 사람은 자신만의 기술로 돌부리를 피해간다고 할 때, 자신은 피해간다 하지만 가족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넘어져 다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돌부리를 피해가는 기술을 모두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돌부리를 서로 합력하여 깨내야 할 것입니다. 돌부리를 깨내지 않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람을 자신의 부주의로 넘어졌다고 나무라고 못난 사람이라 치부한다면 이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시킨 꼴이 됩니다.

공심은 이처럼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바탕과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단순히 개인의 수행과 적공 만에 한정된 마음공부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혜택은 타인의 피와 땀에 신세지고 있다는 은혜를 사회적 구조 속에서 자각하여 보은하려는 행위가 바로 공익심이요 봉공입니다. 또한 이러한 공익심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하는 공도자를 숭배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처럼 공도헌신자를 부모처럼 모시는 사회를 가꾸어야 합니다.(公道獻身者以父事之)
사회적 복지를 잘 가꾸어 놓으면 그 혜택을 자신과 가족이 받을 것이며, 만일 사회적 불합리와 불평등을 외면하면 그 피해를 자신뿐만 아니라 가까운 가족이 직간접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과적으로 세세생생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익사회를 만들어 놓으면 세세생생 공익사회와 인연이 될 것이며 부조리한 사회로 방치하면 그러한 사회에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보살의 봉공인은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를 자신의 집으로 여기고 공익사회로 가꾸어 가는 이 일을 자신의 일로 삼게 됩니다. 그러므로 봉공인, 즉 공심자는 사회가 좋든 나쁘든 가리지 않고 공익사회로 가꾸는 데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카뮈는 자신은 핍박받고 있지 않지만, 핍박받는 타인을 위해 저항하는 이유는 그 핍박이 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사회적 부조리를 외면하고 회피하면 타인을 박해하는 사회적 구조에 동조하게 되며, 결국 시회적 부조리의 공법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사회적 부조리를 공익사회로 만들기 위해 연대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모두의 행복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며,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에서 해독을 제거하고 은혜를 입는 즉 '함께 행복한 낙원인도'는 필수조건입니다.(일원상서원문)

이것이 공익심(公益心)의 공심(公心)입니다.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는 것이요 공도자 숭배 정신입니다.

# 자리이타와 이타적대승행
『정전』사대강령의 무아봉공은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 사상과 자유 방종하는 행동을 버리고, 오직 이타적 대승행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데 성심성의를 다 하자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소태산 가르침'의 강령이요 귀결입니다.
다만, '오직이타적대승행'과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의 해석입니다. 이는 개인과 가족을 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개인과 가족을 위하면서 그 힘으로 일체중생까지 제도하라는 것입니다.(自利利他) 일체중생 안에 개인과 가족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타적 대승행을 자리이타의 상위 단계라기보다는 자리이타의 적극적 표현으로 봐야 합니다. 진정한 자리이타가 이타적 대승행인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키워서 자기 가족도 위하고 사회에도 공헌하는 공
도 헌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익심 없는 자신과 주변 인연들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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