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은 손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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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은 손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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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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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작가의 ‘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 16 ㅣ 정법현 교도(북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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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 강에 달빛이 비치는 것을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고 한다. 1447년 수양대군이 부처의 생애를 밝힌「석보상절」을 지어 세종대왕에게 올리자, 그것에 감동받은 세종이 직접 석가모니의 공덕을 칭송하는 노래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월인천강지곡」이다. 원래 상중하 세 권으로 발간되었는데 소실되었고 지금은 상권만 전한다. 한글로 지어진 최초의 시가(詩歌)라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편경(編磬)에 머리카락 하나가 묻어 있는 것도 소리를 듣고 알아낼 만큼 절대음감의 소유자였다. 그러기에 노래를 지을 수 있었다.

'월인천강'이란「월인석보」권1의 첫 머리 협주(夾註)에“부텨 백억세계(百億世界)에 화신(化身)야. 교화(敎化)샤 미리 즈믄글 매비치요미니라.”라는 표현에서 말미암았다. '부처가 백억세계에 화신하여 교화하심이 달이 일천 강에 비치는 것과 같으니라.'는 뜻이다.

부처의 본체는 밤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하나이고, 백억세계는 백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세계를 이루고 사는 세상을 의미한다. 그 백억세계를 일천 강에 비유하였다. 즉, 밤하늘에 달은 하나지만 그 달그림자가 일천 강에 드리운다는 비유로 부처의 공덕이 온 세상에 고루 비친다고 한 것이다. 그것을 세종은 노래로 지었다. 세종은 부처의 공덕이 조선 백성의 집집마다 고루 비치어 모두들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소망했다. 조선이 비록 유교를 국가경영의 표준으로 삼았지만 세종은 백성들의 정신적 행복을 최우선에 두었기에 석가모니의 일대기에 곡(曲)을 붙였던 것이다.

소태산은 원불교의 월인천강에 대해 말하면서 지월지유(指月之喩)를 인용하여 견지망월(見指忘月)을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지월지유'란 “어리석은 이는 달 가르침을 볼 적에,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지 않듯이 문자에만 집착하고…”(석해운 지음, 중국선종사상사, 한스출판사, 2006년, 103쪽)라는 선종(禪宗)의 고사에 기인하고 있다. 중국의 인문학자인 이중텐(易中天)은 '지월지유'에 대해 '손가락'은 지혜를 일깨우는 것의 비유라고 했다.

석가모니나 소태산은 손가락이지 달이 아니다. 나아가 팔만대장경이나 대종경도 손가락이지 달이 아니다. 일원상도 손가락이지 달이 아니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봐야하는데 사람들은 손가락에만 정신이 팔려 달을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나 소태산같은 사람들은 달을 보고 대각하였기에 위대한 성자가 되었고 부처가 되었다. 그리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된 것이다.

'손가락'은 밤하늘의 달이 어디에 있는 지, 그 방향을 지시하고, 달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빛을 뿌리고 있는 '달'은 사물의 참다운 본체와 작용을 깨닫고 그 본성을 꿰뚫는 대각을 의미한다.

소태산은 “저 표본의 일원상으로 참 일원의 발견하고, 일원의 참된 성품을 지키고, 일원의 원만한 마음을 실행하여 일원상의 진리와 생활이 완전히 합치되”는 것이 '달을 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대종경과 소태산을 달 자체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비유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태산은 원불교 교도들이 집집마다 일원상을 모셔놓고, 일원상만 보고 일원상에 담긴 참된 성품과 원만한 마음 그리고 일원상의 진리를 보지 못 하는 것을 견지망월이라 하여 경계한 것이다.

달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 해답을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한테서도 찾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사물을 소유하는 힘, 그것을 이용하는 힘, 그것을 독점하는 힘, 혹은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 -인간적 현상, 생물학적 현상, 또는 물리적 현상조차도- 의 의미를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질들뢰즈, 이경신 옮김, 니체와 철학, 민음사, 2004년, 20쪽)

들뢰즈가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이란 개념을 공부했다면 아마 다르게 발언했을지도 모른다. 개벽된 물질을 소유하는 힘은 개벽된 정신에서 나온다. 여기에 일원의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태산은 대종경이라는 손가락을 들어 '일원의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생활과 합치하라'며 달을 가리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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