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칼럼] 말년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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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칼럼] 말년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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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1.02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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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담현 교도(마포교당) ㅣ 원불교인권위원회 운영위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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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한마디면 모두가 움찔하던 말년 병장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어느 날 부대 전체에 무언가를 시켰는데 지켜지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병장 어느 날이었다. 그날부터 내 말은 먹히지 않았다. 난 그 때부터 실감했다. 말년 병장이 무엇인지를. 난 평소 예뻐하던 제대가 1년 정도 남은 상병 후배를 더욱 예뻐해야만 했다. 부대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기세가 올라가고 있는 후배 덕에 난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다.

군대라는 조직은 엄격한 상명하복의 구조로 고참이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더라도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은 하극상으로 취급되어 불이익을 당하기 쉽다. 대신 곧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만큼 만만한 것도 없다. 이러한 상명하복의 군대문화는 구성원들이 서로 빠져나갈 수도 없고 서로간 지위가 역전될 일도 없는 폐쇄성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그 폐쇄성의 법칙이 적용되지않는 자 즉 '제대'가 목전에 온 자에게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군대말고도 조직이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종종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검찰에서도 평검사가 부장검사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체육계에서의 구타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조직의 폐쇄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일반은 어떨까. 5천만명이라는 사람들이 모여살고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도처에 있고 세계 어디든 쉽게 드나드는 시대아닌가. 그런데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생겨났다. 3년 넘게 대통령을 막후에서 보좌했는지 지휘했는지 모를 사람이. 국민 모두가 믿기지 않다는 표정이다. 그동안 대통령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청와대 직원들, 국무총리 이하 장관들, 여당 국회의원들 그리고 언론사들. 그런데 지금껏 아무 말도 못했다. 몰랐었다고, 혹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이 모습은 군대 내에서 구타문제가 발생했을 때 쉬쉬하면서 덮었다가 나중에 문제가 크게 터지자 발뺌하는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하지만 이들이 속한 조직 청와대, 정부내각, 국회, 언론사는 군대가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계속 인적교체가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비밀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시기부터 따져 본다면 그 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군대처럼 명확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 리그에 일단 속해 있으려면 눈을 감아야 할 건 감아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들은 그를 수용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리그는 어떤 것인가.

지금 와서 쭉 보니 회전문 인사처럼 계속 고위직에 등용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고급정보에 접속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리그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내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고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민을 대표하여 국민을 위해 국정을 수행하는 자리이고 청와대와 정부내각은 이를 보좌하는 자리이며,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민의를 반영하는 곳이다. 그리고 언론은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위해 국정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곳이다.

그런데 모두 그 기본적인 역할을 저버린 채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눈을 감아왔다. 군대는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하지만 이들이 속한 리그는 그들 스스로 못들어가서 안달이었던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래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모습은 바뀌어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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