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칼럼]무거운 십자가와 가벼운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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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칼럼]무거운 십자가와 가벼운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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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0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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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철 교무(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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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

군 복무시절, 가장 힘들었던 훈련 중 하나인 유격 훈련을 받기 위해 도착한 훈련장 입구에 적혀있던 내용이다.
그 문구를 보면서, '나는 그깟 열매 필요 없는데…'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위기는 곧 기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전화위복', '새옹지마'등 은 위기와 불행의 긍정적 측면을 찬양하는 멋들어진 표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와 불행은 일단 피하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불행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반응한다.
첫째, 무작정 화를 내거나 섭섭해 하며 나 아닌 외부로 원망의 화살을 돌린다. 억울한 마음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기도 하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주위사람들을 불편하게도 한다.
둘째, 무조건 참는다. '참을 인(忍)'자가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 불가에서는 여석압초(如石壓草, 돌로 풀을 누르는 것)라 하여 참는 것은 임시방편은 될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하지만, 인욕(忍辱)이나 금욕(禁慾)은 수행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셋째, 달게 받는다. 나폴레옹은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고 했다. 그것은 전생일 수도 있고, 어제일 수도 있고, 조금 전의 일일 수도 있다.
넷째, 자기 자신을 살핀다. 성현들은 무슨 일이든지 잘못된 일이 있고 보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살피라고 하셨다. 자고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사람이 남의 일을 볼 때에는 등잔불이 위를 비추듯이 아무
것도 거리낌이 없으므로 그 장단과 고저를 바로 비춰 볼 수 있지만, 제가 저를 볼 때에는 등잔의 밑처럼 항상 '나'라는 생각의 그림자가 지혜를 덮기 때문에 그 시비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다섯째, 충고의 의미를 발견한다. 시인 신현림 씨는 “모든 불행에는 충고의 송곳이 있다. 자만치 말라는, 마음 낮춰 살라는 송곳, 불행의 우물을 잘 들여다보라는 송곳이 있다”라고 말한다.
여섯째, 사죄를 한다. 대종사님께서는 괴로운 일을 당할 때에는 사죄를 올리라고 하셨다. 지고(至高)한 자기성찰의 단계이다.
삶에 지친 한 젊은이가 신부님을 찾아갔다. “신부님, 제가 짊어지고 살아 가고 있는 십자가가 너무 무겁습니다.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신부님께서는 성당 지하창고에 십자가는 얼마든지 있으니, 원하는
것으로 바꿔가라고 하였다. 그 젊은이는 지하창고에서 모양도 그럴듯하고 무게도 덜 나가 보이는 것으로 바꾸어 어깨에 짊어졌다. 그런데 무게는 전에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다른 것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색깔이나 형태는 각각이지만, 무게는 한결같았다.
대학원 시절, 기숙사 식당 어머니에게 “시험과 과제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어리광을 부린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는, “형태는 다르겠지만, 시험과 과제가 없는 삶이 있을까?”라고 대답하셨다. 누구나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십자가를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인생이 조금은 덜 고달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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