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는 그 길, 다시 불러보는 노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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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걷는 그 길, 다시 불러보는 노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 관리자
  • 승인 2016.12.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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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⑮ㅣ 조휴정(수현, 강남교당) PD '함께하는 저녁 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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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한물간 거리였습니다. 음악과 낭만이 사라져버린 건조한 거리, 관(官)의 권위와 낡은 간판의 부조화가 불편했던 그 거리가 2016년 겨울,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광화문입니다. 70년대의 광화문은 청춘의 상징이었습니다. 방송국, 신문사가 있고 대형 공연장, 소극장, 영화관, 레코드 가게가 줄지어있었고 당시로서는 세련미를 뽐내던 레스토랑, 빵집, 맛 집들이 즐비했습니다.
가난한 여고생에게 광화문은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설레었고, 최고의 외식이었던 냄비우동에 동동 띄워진 반숙 계란은 지금도 계란에 집착하게 만들만큼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광화문을 잊고 산지 어언 30년. 이제 웬만한 일에는 심장이 말랑해지지 않는 아줌마가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걷습니다. 이문세의 '광화문연가(1988년, 이영훈 작사, 작곡)'의 한 소절처럼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찾아온 거죠.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정말, 흔적도 없이 변했더군요. 간판만 봐도 좋았던 000레코드사, 냄비우동과 맛탕이 맛있었던 분식집, 공개방송을 보려고 기웃거렸던 방송국.. 건물만 사라진 게 아닙니다.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던 소녀와 그 소녀들을 쫓아 다니던 여드름쟁이 소년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급격히 늙어버린 광화문. 그러나 이문세와 이영훈은 타임머신을 태워 그 곳으로 데려다줍니다. 그들이 남긴 명곡들로 말입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휘파람',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 '빗속에서', '옛사랑', '이별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붉은 노을', '가을이 오면', '가을이 가도',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은 어쩌면 그토록 아름답고 순수할까요. 이 노래들을 작사·작곡한 이영훈은 1960년생입니다. 그야말로 광화문 세대였을 그가 만든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심지어 착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현미경으로 사람의 감정을 낱낱이 살펴 표현해내는 섬세한 노래를 비슷한 느낌의 가수가 불렀다면 매력이 떨어졌을 겁니다. 이영훈의 고운 감성에 남성미 물씬 풍기는 선 굵은 음색의 이문세의 조합이야말로 신(神)의 한 수였던 겁니다.
사실, 이문세는 두 얼굴의 사나이입니다. '별밤지기'로 유명한 이문세는 DJ로는 배 아플 정도로 웃기다가도 이영훈이 만든 노래를 부를 때면 완벽하게 슬픔과 고독의 아이콘으로 변신합니다. 두 사람은 한국 가요사에 남을 최강의 팀입니다. 그 조합의 절정은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돼요”라는 '소녀'의 첫 구절에서 여성들 심장을 쿵, 하고 떨어뜨리게 만듭니다.
두 사람의 음악 중, 저는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가장 좋아합니다. “내가 갑자기 가슴이 아픈 건 그대 내 생각하고 계신거죠”로 시작하는 이 노래도 겨울이 배경입니다. '옛사랑'에서도 눈 덮힌 광화문이 등장하는 걸 보면 이영훈, 이문세의 노래는 하나의 드라마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노래로만 뮤지컬도 만들어진 거겠죠.

이영훈은 2008년 겨울의 끝자락 2월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너무 일찍 가버렸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요 순위 1, 2위를 놓치지 않을만큼 큰 사랑을 받으니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제 광화문 연가(戀歌)에서 우리들의 희망을 담아 광화문 연가(連歌)를 부릅니다.
광화문에서 달달한 사랑은 떠났지만 그대신 더 큰 사랑이 광화문을 채워갑니다. 춥지만은 않은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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