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핵'이여,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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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핵'이여,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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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1.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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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우 교도(송천교당, 탈핵정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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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일본에서 핵발전소 피폭노동으로 인한 갑상선암의 첫 산업재해 판정 보도가 있었다. 인정대상 질병은 재판 승소로 두 가지가 추가되어 일곱 가지 암에 한정됐었다. 1966년 첫 가동 이후 피폭노동으로 인한 산재 인정자들은 13명, 그간 50만 명 넘는 피폭노동자를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숫자다. 대개 병에 걸려도 피폭노동과 발병의 인과관계를 직접 입증해야 하는 높은 장벽에 포기하거나 '야쿠자'의 협박과 공갈에 입 다물거나 '뒷돈'으로 타협하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를 겪은 일본에서 방사선이 온갖 질병을 초래함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원폭증'에는 여러 질병을 인정하면서 '피폭증' 인정에는 한 없이 인색하다. 후쿠시마 사고 후 핵발전소 주변지역에서 '발전소에서 일했던 이웃이 병명도 모르게 죽어갔다'는 증언이 많이 쏟아졌다고 한다. 피폭노동으로 인한 산재 판정은 익명 말고 실명으로는 1994년이 처음이었는데, 수십만의 산재촉구 서명을 모으고 탈핵단체와 탈핵전문 변호사의 끈질긴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였다.
이번 갑상선암 첫 산재 인정자는 도쿄전력 직원으로 추정 피폭량이 148밀리시버트였다. 100밀리시버트 피폭이란 200명 중 1명이 암으로 죽는 확률. 일정 비율의 노동자 죽음을 전제로만 핵발전소가 성립한다. 백혈병의 경우 1년에 5밀리시버트 피폭으로도 산재판정을 받는다. 그런데 연간 피폭한도를 50밀리시버트나 허용한다. 5년 동안 100밀리시버트를 넘기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방사선 관리구역에서 일할 수 없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한도를 250밀리시버트까지 올렸다.
이처럼 대형 핵 사고는 상식을 팽개치는 전쟁과 닮았다. 일반인은 연간 피폭한도가 1밀리시버트다. 피폭노동자들은 50배에서 250배나, 이들은 초강력 인간이란 말인가. 후쿠시마 사고 후 매일 6천 명 정도가 핵발전소 부지에서 일한다. 그 땅에 들어선 순간부터 피폭은 당연하니 긴장의 연속이다. 제염작업과 폐로작업에는 조 단위의 돈을 투입하면서, 정작 후쿠시마 사고 처리로 피폭당한 사람들의 건강진단을 국비로 지원한 것은 딱 2년 동안 904명에 불과하다.
후쿠시마 발전소에는 하루 1천 톤 가량의 지하수가 흐르는데 3백 톤 가량이 구멍 뚫린 원자로 건물에 스며들고 있다고 한다. 지하수가 넘치는 60미터 해안을 깎아내 발전소를 세웠으니 당연하다. 한 기에 초당 70톤의 냉각수가 필요한데 해수를 퍼올려야 하는 비용도 절약하고 발전소 용수도 풍부해 일석이조였던 부지 선택과 부지 작업이 재앙이 되어버렸다.
땅 파내고 지은 만큼 거대 지진 쓰나미에 직격 당하고, 이제는 넘쳐나는 지하수가 핵연료와 접촉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염수 저장탱크가 불어나면서 백만 평 발전소 부지도 모자라 인근 숲까지 베어내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를 강행하면서 아베 수상은 후쿠시마 오염수를 통제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폐로 공정을 우선시 하면서 안전사고 빈발과 사망사고도 늘어나는 배경에 아베의 거짓말이 있다. 많은 사람과 많은 언론에서 목숨건 피폭노동자들을 영웅시한다. 아무나 영웅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듯 피폭노동자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대신 나랑 상관없는 특별한 영역의 사람으로 여기고 싶은 걸까.

핵사고가 커지면 직원과 소방관과 군인으로 모자라 나도 현장에 갈 수 있다는 상상은 피하고 싶은 심사는 아닐까. 이달 들어 여진이 부쩍 늘어난 경주, 전기가 남아도는데도 9월 12일 지진에 멈췄다가 대책도 없이 며칠 전 월성핵발전소를 재가동했다. 요즘 상영 중인 핵발전소 재난 영화 '판도라'에는 훌륭한 발전소장과, 죽을 줄 알면서도 가족을 살리려 사지로 향하는 비정규직 기술자와 정신을 제대로 차리는 대통령이 등장한다. 여차할 때 '판도라'영화에서처럼 영웅이 등장하고 참사는 소수의 희생만으로 진정되면 얼마나 좋을까.
핵발전소가 시한폭탄임을 진즉 알아차린 출·재가 몇 명이 4년 전 영광군청에서 핵발전소까지 월요 '생명평화탈핵 순례'를 시작했다. 원자로 시한폭탄 뇌관을 뽑는 일만 한 천지보은이 또 있을까. 사고도 무섭지만 목숨 갉아먹는 피폭노동이 전제인 핵발전소와 감당할 수 없는 핵 쓰레기를 양산하는 핵발전소, 큰 사고 닥치기 전 이제 그만 안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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