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한울안이 만난 사람] “자유롭고 영적인 사람이 주인 되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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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한울안이 만난 사람] “자유롭고 영적인 사람이 주인 되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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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1.1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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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닥친

성주성지의 전쟁무기 사드 배치소식과

10년 전 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발표된 종교인구 조사결과는

많은 재가 ·출가에게 깊은 우려를 남긴 채 한 해를 마무리하게 했다.
'결복 교운을 맞이하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인가?'

또는
'교화정체의 가속화를 알리는 서막인가?'

다양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종교가 가진 본연의 역할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본지는 새해를 맞아 강화도 '심도학사'에서 명상과 인문학을 지도하고 있는

원로학자 길희성 교수(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심도학사 원장)와

떠오르는 소장파 종교학자 성해영 교수(서울대학교)를 만나

한국 종교 그리고 원불교의 미래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 주)

신년기획한울안이만난사람.jpg

박대성 교무(본지 편집장, 이하 박) : 미래 사회의 종교는 초종교적인 영성이 주가 되고 특정교단과 제도는 오히려 장벽이 될 것으로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교 백주년을 맞은 원불교는 세계종교로 도약하느냐 쇠퇴하느냐의 기로에 서있다고 보인다. 혹자는 원불교가 아직까지는 건실하고 무리 없이 성장했다 평가 하지만 미래를 향한 앞으로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길희성 명예교수(심도학사 원장, 이하 길) : 천도교와 원불교는 이제 더 이상 신흥종교로 부를 수 없다. 사상도 깊고, 사회적 평판도 좋다. 다만 신도 수가 정체된 느낌이다. 그러나 인구의 감소 추세를 따라 다른 기성종교들도 더 이상 신도 수가 증가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이러한 와중에 특히 개신교는 질적인 저하가 두드러져 보인다.

: 한국 기독교가 현재는 부정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지만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라고 본다.

: 한국사회에 역동성을 제공했다. 최근 촛불시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시민이 주체라는 근대적 의식은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와 알려줬다고 본다. 교회 운영에서도 신도가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성경을 한글로 번역, 보급해 과거에는 식자들만 접근할 수 있었던 영적 지식을 평신도들에게 개방해서 자유롭게 접근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개신교 평신도의 역량은 향상된 반면에 목회자의 질은 하락됐다. 평준화 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전근대적 신민(臣民)에서 근대사회의 시민(市民)으로 주체의식을 전환하는 역할을 했다.

개신교인의 역동성과 활동성이 70~80년대 민주화의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국 시민사회의 역동성은 이런 개신교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젊은이들을 스펙 쌓는 일에만 열중하고 사회문제에는 관심이 없다고 봤지만 청소년들까지 함께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좋은 에너지다. 이런 역동적인 에너지를 사회에 불어 넣은 것이 개신교의 절대적인 공헌이라고 본다.

: 종교 간의 대화를 하다보면 개신교 목회자들이 사회적 이슈와 현안을 선점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많이 느꼈다. 최근의 촛불 정국을 이끌어가는 모습에서 더욱 그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 그러한 점이 개신교 진보적 진영의 특성이다. 다만 그러한 방향으로 가기에는 개신교 평신도의 인식이 10%도 안 될 정도로 너무 느리다. 지금 촛불집회에 반대하고 나선 보수단체에 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맹신하는 '묻지마 신앙'의 교인들이다.
지금의 탄핵 상황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에 대한 문제이다. 아직도 광장의 촛불을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대다수의 사람이 개신교인이라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 각 종교가 아직도 전문교육을 받은 엘리트 성직자가 일방적으로 신도들을 이끌고 나가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그러나 평신도들 가운데에서도 성직자 이상의 풍부한 종교적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수직적인 운영방식은 이제는 한계에 부딪힌 것이 아닌가?

: 성직자의 인력 구성이 줄어들수록 합리성 · 도덕성· 비판능력 등의 지적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도들 중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종교단체에서 설 자리가 없다.
특히 원불교도 교단의 미래를 위해 과감한 개방이 필요하다. 혜안을 가진 개명(開明)한 지도자들의 과감한 결단과 미래를 위한 투자가 다른 어느 교단 보다 절실하다.

: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개인이 특정 종교에는 몸을 담지 않는 흐름이 서구를 비롯해 이제는 한국에도 감지된다. 또한 다양한 종교적 전통을 개인에 맞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 그렇다. 최근에는 일반인이 몸담고 싶은 종교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설령 간다고 해도 시대적으로 뒤떨어지는 독선적인 설교나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성직자의 지적능력과 사고방식이 보편적 상식과 차이가 나고 말도 안 되는 교리를 주입하는 종교를 보고 누가 그걸 참겠는가?
이제는 소규모 영성공동체가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권이나 제도에서 자유롭고 영적인 훈련 받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직업을 가지고 가족단위, 지역단위로 기도와 독서 등으로 얼마든지 공동체를 꾸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실제로 그런 단위가 점차 늘고 있다. 개신교에서도 작은 교회 박람회 등을 통해 그런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 (길희성 원장은 80년대 목사·교회·교단이 없는 '새길교회'를 이끈 경험이 있다.)
부처와 예수의 정신을 삶 속에서 구현할 사람들이 앞장서서 작은 공동체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성직자나 교단이 해주기를 바라는 시대는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 살 것 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이냐'를 고민
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것을 제도종교는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탈종교의 시대로 갈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공허하고 무의미한 삶을 벗어나고 새로운 영성을자각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10~20%정도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가난에 대한 '한풀이 자본주의'의 영향에 놓여 있지만 점점 이러한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걸 심도학사에 오는 사람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길희성 명예교수는 서울대 철학과 졸업,

미국 예일대학 신학석사, 하바드대학 철학박사 이후

미국 세인트 올라프 대학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서강대 명예교수와 강화도에 위치한

'심도학사' 원장으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 저서「인도철학사」, 「지눌의 선사상」,
「일본의 정토사상」, 「마이스터엑카르트의 영성사상」,

「보살예수」,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 역서「성스러움의 의미」(루돌프 옷토),
「종교의 의미와 목적」(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범한대역 바가바드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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