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별 기고] 자신의 욕망을 조복하는 것이 수행이 실천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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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별 기고] 자신의 욕망을 조복하는 것이 수행이 실천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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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1.2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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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생산 라인에서 무정란이 상품으로 포장되어 나가고, 유정란은 병아리가 되기를 기다린다. 유정란이 병아리로 부화되면 산란계로 쓸 수 없는 수컷 병아리들은 기계로 갈리어 살아있는 병아리들의 먹이가 된다. 이제 이 병아리는 속성으로 자라서 다시 알을 낳고 무정란은 포장되어 인간의 밥상으로 가고, 유정란은 다시 산란계로 쓸 것과 그것의 먹이가 될 것으로 구분된다.
이런 생산의 방식에는 닭과 계란의 오랜 기원 문제는 개입할 여지조차 없다. 그곳에는'닭의 알'이나 '닭의 삶'은 존재하지 않고, 상품으로서의 영계와 달걀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2,000만 마리 살처분이라는 말은 2,000만 마리의 살아있는 생명이 산 채로 매장되었다는 의미를 상실하고, 단지 영계와 달걀의 생산이 급감하였다는 것으로 번역될 뿐이다.
우리는 수 천만 마리 대량 살상의 현실 앞에서도 약간의 소비를 줄이는 여유조차 감당할 수 없어 보인다.어떤 이들은 조바심에 계란을 사재기하려 들고, 그것을 잘 아는 유통업자들은 출하를 고의로 지연하여 수익을 높이려 든다. 이것이야말로 배는 불뚝한데 목구멍이 막혀서 먹지 못하는 아귀들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인의 가르침을 믿고 따른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종교인이라면, 이런 현실에서 무언가 조금이라도 다른 생활양식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소위 고등종교의 가르침에서 전하는 음식 설화에는 몇 가지 공통된 모티브가 있다. 첫째는 인간이 먹는음식은 모두 다른 생명의 주검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수많은 인간의 생명을 위해 신(神) 자신이 자신을 죽임으로 생명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둘째는 음식에 대한 탐욕을 금하고 당일 먹을 것에 만족할 줄 아는것이다. 이집트의 노예로 있었던 유대인들이 탈출하여 사막에서 유랑할 때, 그들에게 야훼신은 '맛나'와 '메추리'를 안정된 먹거리로 제공하였다. 그러나 그것에는 단지 당일 먹을 것 이상을 취하지 말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만일 욕심을 내어 필요 이상을 취하였을 경우에는 나머지 음식이 썩어 질병의 원인이 되었다. 초기불교에서 수행자들의 삶은 걸식에 의존하였다. 자신이 노동을 하지 않는 대신, 주는 대로 얻어먹어야 했으며 하루 한 끼의 식사로 만족해야 했다.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대로 먹는 것, 먹고 싶은 양이 아니라 주어진 양 만큼 먹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작은 욕망을 조복(調伏)시키는 것이야말로 작은 수행실천의 노력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이미 내 마음에는 벌써 '자잘하게 먹는 거 따위에 구애받아서 어찌 깨달음을 얻겠는가?'라는 호기어린 반문이 일어나는데 말이다. 하나의 알이 깨어서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도 '줄탁동시', 알의 안과 밖에서 힘을 합쳐서 깨어야 한다고 했다. 수행도 삶도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전이나 성인의 가르침을 내면의 힘으로 삼을 수도 있고, 내양심의 소리에 대응하여 울리는 밖의 힘으로 삼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내가 속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실은 밖에서 나를 향해 던져지는 질문이고 알을 깨는 도전인 것은 분명하다. 내면의 양심을 깨우고 밖의 현실에서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 보자. 오늘 나는 계란 한판을 사서 푸짐한 계란찜을 먹으며 흐뭇해 할 것인지? 잠시 시간을 늦추고'닭의 알'이 사라진 식탁에서 그것의 없음, 달걀의 공성(空性)에 대해 한 소식 듣는다면 계란찜보다는 푸짐한 밥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끝)

글쓴 이 | 김현진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 박사과정 수료.
종교음식 전문가, 불교인문학 기획자이자 살림 큐레이터다.

현재 사찰전문음식점 마지와 아카마지(Aca Maji) 대표.

각종 매체에 종교음식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이 있다.


* 본고는 '불교저널'과 동시에 개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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