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이 만난 사람] '김어준은 어떻게 김어준이 됐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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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이 만난 사람] '김어준은 어떻게 김어준이 됐나?'(1)
  • 관리자
  • 승인 2017.03.02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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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벙커'라고 하는 카페 겸 사무실을 운영하는데 거기 오는 분들이 방송이나 강연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 손을 잡고 와서 물어요.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김어준 씨처럼 기를 수 있냐”고, 그런 질문을 꽤 많이 받다보니 '김어준은 어떻게 김어준이 됐나?'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아주 유명한 라캉(프랑스의 철학자, 1901~1981)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아이가 처음 태어나면 부모를 바라보게 되죠? 그러다가 입을 떼기 시작하면 엄마 아빠들이 아주 좋아하죠. 걷기 시작하면 박수를 치고, '엄마', '아빠'라고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환호가 계속 이어집니다.
학교에 들어가 성적이 좋으면 칭찬하고 그러니까 아이는 부모가 욕망하는 것을 자기도 욕망하게 된다는 거죠. 엄마가 좋아하는 걸 자기도 좋아하게 되는 건 누구나 겪는 발달과정인겁니다.
타인의 욕망을 옹호하는 겁니다. 선생님들이 박수를 쳐주면 선생님들을 만족시키려고, 혹은 그런 식으로 주변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합니다. 타자의 욕망을 계속 욕망해 가는 거죠.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면 자기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분하는 시점이 옵니다. 이건 사람마다 다 다르고 평생 안 오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건 내가 뭘 하고 싶은데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건지, 다른 사람이 기대하니까 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겁니다. 자기가 뭘 원하는데 이게 내가 원하는 건지, 나한테 주어진 건지 구분없이 사는 거예요.

# 자신과의 첫 대면
알고 보니 저는 굉장히 일찍 이런걸 구분하기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그걸 느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저한테 무척 관심이 없으셨어요(웃음).
그당시 연합고사라고 중3에서 고1로 넘어가는 시점에 전국적으로 시험을 보고 성적순으로 고등학교를 들어갔는데, 저희 부모님은 제가 이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관심이 없었어요.
나이를 먹고 나서 부모님께 “특별한 교육철학이 있어서 그랬느냐?”물어봤는데 없었답니다. 그냥 '잘 치겠거니, 잘 크겠거니'하신 거죠.

그날 제가 연합고사를 치고 집에 돌아 왔을 때 집에 아무도 없었어요. 평소와 같이 혼자 밥을 차려 먹으려는데 그날따라 억울하더라고요. 밥통에 밥은 있는데 주걱이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밥그릇으로 밥을 푸고 찌개를 펐어요. 그리고 나서 보니 수저가 설거지통에 있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귀찮아서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밥을 맨손으로 먹었어요. 묘한 쾌감이 있더라고요. 맨손으로 밥을 먹다가 보니 '옆에 있는 김치찌개는 어떡하지? 다시 숟가락을 씻어야 하나'싶다가 '손으로 다 먹을수 있겠다'싶어서 찌개에 손을 담가서 먹다가 하얀 옷에 찌개가 흘렀어요.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면서 뭐랄까? 이미 버린 몸?(웃음)

내부에서 뭔가 알 수없는 에너지가 폭발하더니 양손으로 마구 먹기 시작했어요. 그게 굉장한 쾌감이었어요. 난장판이 됐죠. 냉장고에 있는 깍두기도 맨손으로 집어먹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엄청 흥분했어요. 그러고 냉동실을 딱 열었더니 냉동 삼겹살이 있는 겁니다. 그걸 집어서 '뜯어 먹어야지'하고 잡았는데 너무 차가워 제 정신이 돌아오는 겁니다.
'이건 아니지 않나?'싶어 냉장고에 삼겹살을 다시 넣어놓고 앉아보니, 바닥도 난장판이 되어있고, 옷도 더럽고 그래서 씻으려고 화장실을 가서 거울을 보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아! 나는 동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놀라운 깨달음이었어요. 물론 인간도 동물이라는 것을 배우죠. 근데 그 뒤에 '그러나'라는 글자가 붙자나요. 결국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고 배우는거죠.

근데 제가 그 밥을 손으로 먹다가 '내가 동물이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굉장히 묘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김어준'이니까, 사람들이 나를 김어준이라고 불러준 거잖아요? 나를 보고 선생님이 '학생'이라고 불러줬고, 부모님이 '아들'이라고 불러줬고 사람들이 '남자'라고 말해줬고, 누구라고 항상 주위에서 말해줬지, 그때까지 내가 스스로를 규정해 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아! 나는 동물이구나'하는 자기정체성을 가진 건 처음이었어요. 그게 옳던 그르던 간에 말입니다.

'넌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하고'등의 말을 통해 그때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내가 진짜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모든 게 새롭게 보였어요. 왜 아무도 나에게 동물이라고 말을 안 해줬지? 처음으로 자신과 대면했던 겁니다.

# 정신적인 독립
하루는 제가 중간고사를 보고 일찍 들어간 날이었는데 저희 어머니와 여동생이 외갓집에 가고 아버지가 일찍 집에 들어 오셔서 우연치 않게 대낮에 부자 둘이 있게 됐습니다. 그 나이에는 부자간에 할 말이 없습
니다(웃음).

30분쯤 있다가 아버지가 저한테 밥을 먹으러 나오라 해서 나왔더니 삼겹살을 구워 주시더라고요. 심지어 본인은 채식주의자인데.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망설이시다가 마지막 제 밥 숟가락에 삼겹살 하나를 올려주시는 거예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제가 뭘 알게 됐냐면, 어머니와 딸이 없는 찬스를 이용해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것을 해보고 싶으셨구나, 아들 수저에 고기를 올려 주는 게 하고 싶으셨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눈물이 나는 거예요.
서로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방에 돌아갔는데 아버지가 40대 남자로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이 40대 남자와 여자가 서로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고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남자와 여자에 대해 '연민'같은 게 생기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렇게 생각해도 되나?'하며 죄의식이 들었습니다.
그런 죄송함이 사라진 것은 나이를 한참 더 먹고 나서 어느 정신과 의사랑 얘기를 하다가였어요. 제가 어머니를 언급 하는데 '그 여자의 일생은'이라고 한 사람의 여자처럼 표현을 하더래요.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미 10대 때부터 부모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왔던 겁니다.
그 의사가 저한테 자기는 상담을 하며 제 나이 때 한국 남자 중에 자기 어머니를 '그 여자'라며 악의를 갖지 않고 표현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그게 정서적으로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해석해 줬습니다.

# 나의 무신론 입문
세 번 째 경험은 고2 때입니다. 저희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라 아주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겨울방학이었는데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개신교에서는 가롯 유다가 아주 나쁜 놈이잖아요. 유다에 대해 배울 때 '유다는 예수를 배신했지만 너는 배신하면 안 된다'라는 교훈으로 배우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래, 나도 배신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유다가 지옥에 갔나? 천국에 갔나? 궁금해졌어요. 왜냐면 유다가 예수를 은화 30개에 팔지 않았으면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을 해야 하는데 안 죽으면 어떻게 부활해요? 그러니 유다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겁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독생자로 보내 인류를 구원하게 하려면 일단은 유다가 필요한 역할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내가 유다면 어떡하지?'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내가 유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유다도 자기가 예수를 팔게 될지 몰랐을 거 아니에요. 자기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는데 지옥에 가게 됐는데, 그게 다 하나님의 계획이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웃음)
그래서 목사님, 전도사님에게도 유다가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물어봤는데 다 지옥에 갔데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뜻이 있는데 나는 그걸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답변 하나는 “이렇게 의심하면 지옥에 간다”는 겁니다.
저는 소위 모태신앙이라 큰 갈등이었어요. '의심하면 지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부당하면서 두려웠어요. 내가 이 사실을 의심했는데 진짜로 지옥이 있어서 벌 받으면 어떡해요. 그렇다고 무서워서 의심을 못하면 너무 비겁하잖아요. '이건 너무 비겁한 세계관이 아닌가? 나한테 안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 시점에서 신을 더 경배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어요. 신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걸 의심하면 지옥가기 때문에 의심하지 말라고 요구하거나, 혹은 내가 의심 가는데 의심 안 가는 척 하거나, 또는 무서워서 의심을 못하거나 그런 것은 너무 비겁한 세계관이다.

'나는 그렇게 못해. 그냥 지옥에 갈래!' 이게 무신론자로써 저의 첫 출발점이었습니다.

김어준은 언론인, 시사평론가다. 1998년 딴지일보를 창간했으며, 2011년에는 딴지라디오 '나는 꼼수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외에도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등 방송에서 시사평론가로 활동했다.

대한민국에서 인터넷 미디어 '팟캐스트'시장이 활짝 열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주역이다. 지금은 교통방송(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한겨레신문 하니TV에서 '김어준의 파파이스(Papa is)'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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