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의 '그쟈'
방송국에 있다고 하면 누가 가장 잘 생겼느냐, 예쁘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아직도 연예인을 보면 신기해하는 저로선 답하기 어렵지만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최백호입니다. 지금은 70을 향해가는 나이지만 최백호는 점점 더 멋있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나이가 들어서도 너무 '여자', '남자'로서의 성적(性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연예인을 보면 거부감이 들죠. 과도한 성형, 어울리지 않은 의상 등 외모에 대한 집착이 한때의 명성마저 갉아먹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는데 최백호는 완전 다릅니다.
로션도 바르지 않은 것 같은 푸석한 얼굴과 빗질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자연스런 헤어스타일, 낡디 낡은 청바지에 수수한 티셔츠 하나로 스튜디오에 들어서도 60대의 최백호는 충분히 멋있습니다. 이성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의도성이 보이지 않고 스타라는 본인과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거만함이 없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는 '고독'의 아이콘이지만 실제로 본 그는 소박하고 겸손하고 담백한, '좋은 사람'입니다. 밤늦게 택시를 타면 많은 기사님들이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듣는데 한결같이 '투박하지만 진실하다'고 평합니다. 그이의 품성이 라디오에서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또 하나, 그를 멋있게 만드는 이유는 매사 '선선한' 그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최백호는 매니저가 없습니다. 섭외 전화를 늘 직접 받습니다. 답도 빠르고 확실합니다.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겁니다. 늘 남의 눈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연예인이면 어쩔 수 없이 생겼을 '가식'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습니다.
최백호의 노래도 담백하고 선선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꺾이지 않고 쑥쑥 직선으로 일필휘지(一筆揮之)하듯 시원하게 부르는데 슬픔이 촘촘히 녹아있으니 백만 불짜리 노래가 나오는 겁니다. 게다가 어떻게 된 게 나이가 들수록 고음이 더 잘 나온다 합니다. 노래 못지않게 기타연주도 깊고 묵직해서 전문연주가보다 사람을 더 흔들어놓습니다. 더 놀라운 건 유머감각도 뛰어나다는 겁니다.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다보니 의도
하지 않은 부분에서 웃음이 빵빵 터집니다. 멋있는 사람은 남자건 여자건 천진난만한 면이 있는데 최백호가 바로 그런거죠. 할 말 다 하되,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되 무례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를 오랫동안 사랑하는것 같습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영일만친구', '그쟈', '낭만에 대하여', '입영전야', '뛰어', '애비' 등 많은 히트곡이 있지만 사실, 최백호 실력이라면 히트곡이 더 많아야합니다. 한때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영화제작, 일어나자마자 화실로 향할 만큼 평생의 꿈인 화가의 길을 함께 걷다보니 노래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나봅니다.
팬으로서 그의 모든 노래를 다 좋아하지만 요즘처럼 날씨가 풀리고 봄의 향기가 느껴지면 최백호의 '그쟈'를 듣습니다.
“봄날이 오면은 뭐하노 그쟈,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 꽃잎이 피면은 뭐하노 그쟈”다시 못 만날것 같은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무리 멀리 있어도 우리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다시 만날거 라는 착한 연인들의 그리움에 괜히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후배가 만들어준 최근작 '부산에 가면(에코브릿지 작사 · 작곡)'은 '그쟈'의 후속편 같은데요, 이제는 완전히 멀어진 옛사랑, 지난 삶을 떠올리는 중년의 회한에 깊이 공감되어 자주 듣게 됩니다.
요즘, 멋지게 나이든 남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한탄을 많이 듣습니다. 무례하고 느끼하고 잘난척하는 나이든 남자는 정말 사절입니다. 그래서 최백호가 돋보입니다. 깔끔하게 면도를 하지 않아도 일부러 멋내지 않아도 평생 욕심없이 순수하게 살아온 내공이 그대로 드러나는 멋, 실력, 인품. 70~80이 되어도 최백호는 멋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