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이 만난 사람] 글씨 하나, 마음 한 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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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이 만난 사람] 글씨 하나, 마음 한 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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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2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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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이 만난 사람, 인터뷰

매년 대각개교절을 맞아
익산에서 열리는 '법등축제'가 올해는 더욱 특별한 행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법등축제 중심에 서 있는 아트디렉터 이진경 씨를 한울안이 만났다.

#. 쌈지길 그리고 이진경 그리고 종교

한울안이만난사람(쌈지길).jpg

인사동 '쌈지길'의 아트디렉터이며 일명 '쌈지체' 또는 '이진경 체'로 알려진 글꼴을 만든 이진경 화가는 2002년에 쌈지길 아트디렉터 일을 시작했다. 쌈지 천호균 전 대표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사람이다. 그녀는 천 대표를 알게 되면서 나만을 위한 그림에서 세상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쌈지농부'와 '어린농부'라는 기업을 시작해서 지금은 파주 헤이리에서 '농사가 예술이다'란 이름으로 각 지역농부를 소개하고 '농부로부터'란 친환경 농산물가게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은 인디밴드 데뷔 공연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한 가운데 이진경 작가가 활약하고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위치한 이 작가의 특별한 작업실에 도착하니 환하게 웃으며 등장한 이 작가는 “특별히 종교를 믿어본 적이 없어요. 조직이라는 틀에 메이는 것이 싫어서 몸담을 필요를 못 느꼈죠. 그런데 교무님한테 시집간 친척 동생(이경민 교도, 서울정토교당)의 인연으로 이번 일과 맺어졌으니 그것도 큰 인연이겠죠?”라며 말문을 연다.
어찌 보면 어린이의 글씨 같고 민화에서 튀어나온듯한 독특한 그녀만의 작품으로 유명한 이진경 작가에게 원불교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 왔을까?
“재작년 겨울에 익산, 공주, 부여를 무대로 한 '백제의 재발견·현대미술리포트'전을 기회로 익산을 다녀왔지만 총부는 올해 처음 방문했어요. 덕분에 신년하례도 참석했지요. 원불교는 인터넷, 동영상 등으로접했지 주위에 원불교를 믿는 사람이 없었어요”

법등축제를 준비하면서 이제 겨우 포스터 하나 제작됐을 뿐인데 보는 사람마다 그 파격적인 '매력'에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는 반응에 그저 생글생글 웃을 뿐이다.

“제 그림을 본 교무님들이 놀랐다고 해서 즐거워요. '저건 누가 했냐? 초등학생이 그렸냐?'고 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원불교는 이미지라고 할 만한 것이 일원상 밖에 없어요. 외부 사람들은 그 종교의 교리보다도 이미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속성이기도 하구요”

예술가는 예술로 말하는 것이라더니 작품이야기로 전환하자 표정이 금세 진지해진다.
“말씀은 '명(命)'이라고 생각해요. 내 삶에서 크게 안고 가야 할 이야기, 내가 걸어가야 할 이야기, 삶 자체가 살아있는 이야기가 바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펼치는 것을 명으로 담아놓은 것이 바로 모든 종교의 경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지를 보고 싶어 해요. 흔히 이슬람은 이미지가 없는 종교라고 하지만 모스크 안에는 꾸란(이슬람의 경전)을 아라베스크 무늬로 세밀하게 담아 놓습니다. 이미지를 통해 교리를 배우게 되는 거지요. 지금의 원불교는 아직 이미지가 없는 종교라고 생각됩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보니 아직은 조악한 부분도 있고 이런 저런 알려진 이미지를 끌어다 쓰고 있는 거지요”

아직 원불교를 접한 시간은 적어도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눈썰미는 적절했다.

“기독교, 불교 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오래된 종교들의 예술은 당대 최고의 화가와 조각가가 만들었습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은 가장 비싼 재료인 청금석에서 파란색 물감을 뽑아 쓰고, 당대 최고의 몸값을 가진 미켈란젤로가 벽화를 그렸죠. 우리도 유라시아 대륙을 걸친 거대한 힘인 샤머니즘과 같은 화려함이있어요. 서양 중세 미술이 아무리 정교한 미감이 있고 뛰어나다고 해도 우리의 당집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적 감각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라 운주에 있는 천불천탑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묘한 감흥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있는 본성의 발현이라고 봅니다”

#. 삼학은 삶의 태도

한울안이만난사람(이진경).jpg

홍천에 들어와 작업을 한지 12년 째, 전에는 서른여섯까지 포천에서 전시실을 운영했단다. 그러다 엄청난 불행이 찾아왔다고 한다. 갑작스런 화재 때문에 작업실과 작품을 하루 아침에 모두 잃게 된 것, 천성이 낙천적인 건지 무사태평한 건지 남의 말 하듯 담담하게 자신의 불행을 그려낸다. 그러나 수행자처럼 홍천에 자리 잡으며 자신의 대표적인 작품들도 강원도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지는 홍복이 함께 찾아왔다.
“현대인들은 미감이 흩어졌다고 봐요. 70~80년대 그나마 건강한 미감을 갖고 있는 농부들이 도시로 이전하게 됐고, 지금은 내적 성찰보다 외부에서 유입된 많은 정보와 서구의 영향으로 국적없는 미감으로 바뀌고 말았지요. 예전에 카드광고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했습니다. 사실 부자가 되라는 건 욕 입니다. 부자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 태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요. 앞으로 종교는 원불교에서 말하는 '작업취사'에 해당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야 된다고 봅니다. 삶의 태도는 삼학으로 갖춰야 된다고 봐요. 그것이 한 인간의 맑음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거실 한 쪽에 갖춰놓은 작은 일원상 액자와 교전이 눈에 뜨인다. 여기까지 말하곤 멀리서 손님이 왔다고 엉덩이를 훌훌 털고 일어나 점심을 준비한다. 김치가 너무 좋아 유학도 갈 수 없었다는 그가 뭉텅 김치를 썰고, 훌쩍 생선도 굽는다. 필자도 일단 밥을 먹고 이 이야기를 다음 주에 이어가기로 했다.

편집장 박대성 교무
(다음 호 계속)

작가 이진경은 1967년 서울 생, 덕성여자대학교 졸업,

금호미술관, 도쿄 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성곡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등에서 여러 번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2002년부터 '쌈지길'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로고 ·공간 디자인 및 '이진경체'폰트를 제작했다.

지금은 '쌈지농부', '농부로부터' 디렉터로 강원도 홍천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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