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든든한 큰오빠 같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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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든든한 큰오빠 같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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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0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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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22) ㅣ 조휴정 PD(KBS1 라디오 PD,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정태춘의'고마운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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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정태춘은 40년 전부터 스타였습니다. 1978년“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으로 시작되는'촛불'은 나오자마자 큰 사랑을 받았죠. 본인은 외모 콤플렉스로 소년기에 고민이 많았다는데 당시 여학생들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말수는 적어도'씨익'웃으면 그렇게 선량해보일 수 없었고 무엇보다 한번 마음 주면 평생 변함없을 것 같은 진정성이 보였으니까요. 노래도 진지하고 따뜻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사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는'시인의마을',' 북한강에서',' 사랑하고 싶소',' 떠나가는 배'등 본인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대중가수로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팬들에게 얼굴을 자주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연 위주로 활동을 했고 본인의 음악적 성향을 십분 살린 음반도 꾸준히 냈다는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오지 않으니 몰랐던 겁니다. 그런 행보도 정태춘 답습니다.
그가 인기에 연연해하고 연예인스럽게 산다면 정태춘이 아니겠죠. 더군다나 아내가 박은옥 아닙니까. 두 사람이 결혼 한다고 했을 때, 저는 심훈의 소설'상록수'에 나오는 박동혁과 채영신이 떠올랐습니다.
두 사람 다 어떻게 연애를 했을까 궁금합니다. 정태춘은 사랑한다는 말이나 달콤한 이벤트 따위는 절대 못할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 단 한 여자에게는 다르겠죠? 두 사람은 사랑과 사회운동이 조화를 이룬 완벽한 결합으로 보였고 부부 이상의 동지적 관계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안정이 되어서인지 정태춘은 점점 더 사회성 짙은 음악의 길을 갑니다. ' 사랑하는 이에게'와 같은 빅히트곡도나왔지만'아, 대한민국',' 92년장마, 종로에서',' 다시, 첫차를기다리며'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의식 있는 노래를 꾸준히 발표합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성과도 이뤄냅니다. 1996년, 헌법재판소의'가요 사전심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겁니다. 이제 정태춘은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입니다. 저는 그가 추구하는 세상에 동감을 하면서도 사회운동가로서의 정태춘만 부각될까봐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는 정말 노래를 잘 만들고 잘 부르는'대중가수'이니까요.
또한 그의 사회성 짙은 노래들은 아무리 좋아도 선곡하기 부담스러웠는데 얼마 전'고마운 사랑아(문익환 시, 류형선곡)'를 듣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사랑아. 샘솟아 올라라. 이 가슴 터지며 넘쳐나 흘러라. 새들아 노래 불러라. 나는 흘러 흘러 적시리. 메마른 이내 강산을. 뜨거운 사랑아. 치솟아 올라라. 누더기 인생을 불 질러 버려라. 바람아 불어오너라. 나는 너울너울 춤추리. 이 언 땅 녹여 내면서”
아, 왜 이 노래를 이제야 들었을까요! 여전한 정태춘, 그 낮고 깊고 따뜻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입니다. 잔잔하지만 이렇게 자극적일 수 없습니다. '정의'는 안방에서나 외쳤던 겁쟁이에게도 마구 샘솟는 애국심, 조국애, 동포애로 4분이 힘겹습니다.
정태춘 아니면 이 노래를 이렇게 소름끼치게 부를 수 없습니다. 메마른 이 땅, 누더기 인생, 꽁꽁 얼어붙은 아픈 현실이 있지만, 우리의 연대(連帶), 우리의 사랑만이 녹여낼 수 있다는 희망을 푸석푸석 기름기 하나 없는 담담한 얼굴로 전해주는데…. 저는 눈물 나게부끄러워졌습니다.
때로는 그가 부르는 노래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그가 지키고 싶어 했던, 가고자했던 길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재능으로 화려하게 살 수도 있었으나 굳이 고단한 삶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 그의 노래가 그의 삶이 새삼, 고맙습니다. 우리 가요계에 정태춘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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