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원불교, 그 종교적 가치에 눈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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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원불교, 그 종교적 가치에 눈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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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07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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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 원광대학교 정역원

한울안오피니언(원익선).jpg

인류를 구제할 종교로서의 첫 과제를 멋지게 통과하는

그 순간을 함께 지켜보기 위해 이곳으로 와주십시오

일본 선종사에서는 국가권력과 멀어짐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자 노력한 조사(祖師)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전국 제일의 선종이 된 13세기 조동종의 조사 도겐(道元) 선사는 말할 것도 없고, 또 한 명 역사 속에 기록된 유명한 조사가 있습니다.


그는 16세기 묘심사파의 승려 카이센 죠키(快川紹喜, 1502-1582) 선사입니다. 그를 싫어하는 장군 오다 노부나가가 공격하여 승려 100여 명과 함께 잡혔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들을 포박하여 감금시키고, 그 밑에 불을 질러 태워 죽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카이센 죠키는“여러분이 앉아있는 밑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는데 법륜을 굴릴 수 있는가? 각자 한마디씩 하여보게. 최후의 일구(一句)를”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들 한 마디씩을 하자, 마지막으로“안선(安禪)은 반드시 산수(山水)에 있지 않다. 심두(心頭)를 멸각(滅却)하면 불속일지라도 시원하다”라고 일갈하였습니다.

일본의 선종은 국가권력을 장악한 무사들에 의해 각광을 받아 성장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무사들의 권력을 멀리한 조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선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즉 살생을 멀리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대의 권력과 결탁하게 되면, 선이 살생의 도구가 되는 부조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사정권을 잡은 장군들 가운데는 좌탈입망을 할 정도로 선을 좋아한 장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일본의 선이 무사들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안목 있는 선사들은 이를 오히려 경계하였습니다.


저는 최근 한국의 역사가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무사정권이 칼을 통해 권력을 유지한 것처럼, 반공 이데올로기나 안보 프레임에 의해 남북전쟁 이후 남쪽은 한 세력이 오랫동안 권력을 독점해 왔습니다. 이러한 비열한 권력을 암묵적으로 추인함으로써 한국의 종교는 자동적으로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은 군사독재정권의 수하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독재권력 밑에서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민초들의 행복추구권, 불가침적인 인권 등의 기본권을 휴지조각처럼 만들고, 국민들을 자신들의 발아래에 두었습니다. 현재의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솔직히 우리 원불교가 전쟁을 승인하지 않더라도 유사시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가정을 놓고, 그것을 막기 위해 여기 성주 성지에 와있습니다. 혹은 우리가 국가권력, 그것도 폭력을 정당화하는 국가권력에 밀리면, 우리 교단도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승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역사, 그것도 종교와 국가 관계의 역사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에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고, 한국의 군대를 그 전쟁터로 몰아넣는다면, 국가는 자신의 역할에 실패한 것입니다. 전쟁에 백성들의 자식들을 내놓아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명백히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전쟁에 대응하는 것은, 죽은 국가가 이미 메뉴얼화 된 조건에 반응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무의미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아야하는 것이 국가의 기능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할 기본권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국가가 지켜야할 생명을 버리도록 요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소성리 특별법회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금과옥조로써 여기는 불살생의 첫 계율을 지키지 못한다면, 종교인으로서의 자격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소성리가 우리의 위대한 성자가 나시었기 때문에 성지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성지가 성지이기 위해서는 그 성자가 짜놓은 법을 오롯이 지켰을 때, 그 성지는 성지다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 가르침,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에 우리가 진정한 불문(佛門)과 성문(聖門)의 일원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선후배 동지님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몇 가지 약속을 빼고는 모든 일정을 다 놓았습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에서 처리하자고 마음먹고 왔습니다. 교단이 이 시험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면, 그 미래는 모든 부처님들과 성현들께서 보장해주시고, 지켜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니 모든 민중들이 원불교의 그 종교적 가치에 비로소 눈을 뜨고, 이제는 반대로 원불교를 지켜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철저히 믿는 인과의 도리이자 원칙 아니겠습니까.


이제 남은 2~3주, 이곳 성주로 와 주십시오. 원불교가 진정으로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한 선진들의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세워진, 인류를 구제할 종교로서의 첫 과제를 멋지게 통과하는 그 순간을 함께 지켜보기 위해 이곳으로 와주십시오. 저는 오늘 마을회관 앞 특별법회의 설교를 시작하기 전 사드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단결시키고, 평화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진정으로 알게 해주고, 이렇게 산천초목과 이제 막 깨어난 풀벌레와 민초들을 청중으로, 아름다운 달마산을 배경삼은 대법당에서 성대한 대각개교절 특별법회를 열게 한 것은 물론, 마침내 이곳이 세계평화의 성지가 되는 그 길을 터준 사드야말로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의 현장, 원불교가 제2의 법인을 나투는 이 역사의 현장에서 그 기쁨을 함께 만끽하러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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