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곡에 담긴 삶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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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한곡에 담긴 삶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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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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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26) ㅣ 조휴정 PD(KBS1 라디오 PD,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이두헌의'마중 그리고 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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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운전면허증 갱신 때문에 거의 10년만에 증명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젊어보인다'는 격려성 인사말에 깜빡 속아서 나이는 모른척하고 살았는데 어머나, 사진속의 여자는 낯설 만큼 바싹 늙어있었습니다. 미추(美醜)에 연연해하지 않고 의연하게 늙어가겠다던 다짐은 얼마나 공허하고 교만한 것이었을까요.


늘어나는 흰머리와 감출 수 없는 노화의 징후들에 매일매일 마음이 조금씩 무너지니 죽음이 닥치면 어떨까싶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고 책도 나름 찾아 읽는 편이지만 웰다잉(well-dying)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젊음은 확실히 떠났으나 아직 완전히 늙지도 않은, 어정쩡한 몸과 마음은 자꾸 과거의 그리운 시절로 뒷걸음칩니다. 특히, 완전히 나에게 의지하는 아기였던 아들의 몽실몽실한 살의 촉감, 우유냄새, 새근거리던 숨결이 바로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나고 가장 그립습니다. 30년 전 일인데도 어쩌면 그렇게도 완벽하게 느낌이 되살아나는지요.


나이가 들수록 생명에 대한 경외로움과 가족의 소중함, 고마움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30년 후에는 그 아들에게 온전히 의지해 인생을 마감하겠지하는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회한과 상상 속에서 이두헌의'마중 그리고 배웅(2000년, 이두헌 작사 작곡)'을 들어봅니다.


“네가 드디어 이 세상에 오던 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널 마중 나갔지. 하얀 이불 사이로 내민 너의 작은 손. 나는 흐르는 내 눈물을 감출 수 없었지. 너는 나에겐 하늘이 내게 준 가장 귀한 선물. 영원한 나의 친구. 세월이 흘러 나를 배웅하는 날엔 너무 슬퍼 울지 않기를. 너도 이제 곧 가슴 벅차게 누군가를 마중하게 될 테니. 세상이 널 힘들게 할 때는 한번 생각해 보렴. 우리가 지내 온 많은 날들을. 그리고 기억해 주렴 너에게 기쁨이 되고 싶었던 나를 언제나 네 곁에 살아 숨쉬는”


내가 벅차게'마중'했던 아이가 자라서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나를 '배웅'하는 순간이 오겠죠. 부모와 자식이 한평생 나누었을 사랑과 우정, 이별과 위로를 담은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이두헌, 1983년'다섯손가락'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그에게 휴식이란 없었을 겁니다. 선천적으로 기(氣)가 쎈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방송가, 연예계에서도 제가 아는 한 이두헌은 다섯 손가락 안에 속합니다. 미국 유학기간이 그나마 조용하게(?)지낸 기간일 텐데 그때도 치열하게 공부해서 기타연주로 석사까지 마쳤습니다.


'새벽기차',' 풍선', '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 사랑할순없는지', ' 이층에서 본 거리'등 다섯손가락 시절의 주옥같은 노래를 직접 만들었고 '잊지말아요(최성수)', ' 유혹(이재영)', ' 차창에 흐르는 이별(유익종)'도 그가 만든 노랩니다. 유학 다녀온 이후에는 대학교수로 와인전문가로 사업가로 뮤지컬 감독으로 제주도 홍보대사로 방송인으로 요즘은 기업체에서 서로 모셔가는 인기 강사로 매년 인생 최전성기를 갱신하고 있는 중입니다.


글도 기죽게 잘 쓰고 심지어 요리도 잘합니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도 하기 힘든 절임류까지 척척 해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맛 집 정보,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해도 막힘이 없고 유쾌하게 대화를 주도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두헌이 노래를 잘해서 좋습니다. 쭉쭉 뻗어나가는 걸 자연스럽게 잡아당기는 이두헌의 묵직한 저음은 진지하고 풍성합니다. 그래서 여러 번 들어도 물리는 법이 없습니다.


성공에 안주하거나 지루한 것을 못 견디는 그는 몇 년 후에는 분명 또 무언가에 도전해서 일가를 이루고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이두헌이야말로 진정한 벤쳐인이네요. 뭘 하더라도 가수 이두헌으로 남아주길, 대학시절부터 그의 노래를 참 좋아했던 팬으로서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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