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 당처는 어디에 있는가? (교의품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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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 당처는 어디에 있는가? (교의품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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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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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 작가의 ‘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 23 l 정법현 교도 (북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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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 당처는 어디에 있는가?' 교의품 16장을 읽는데 맨 먼저 떠오른 의문이었다. '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사은은 이 세상 어디에나 있으며……' 이런 너무나도 당연한 대답을 듣기 위하여 의문을 갖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다. 김민기의 노래 중에 '금관의 예수'가 있다. 같은 이름의 연극에 나오는 노래다. 가끔 원불교의 법신불사은도 금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법신불의 네 가지 은혜를 도무지 느낄 수 없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지의 은혜는 어디에 있으며 부모의 은혜는 어디에 있는가. 동포의 은혜는 왜 느낄 수 없고 법률의 은혜도 어찌하여 피부에 와 닿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가수 김민기도 하지 않았던가 싶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노래 가사에 나오는 주(主)를 사은(四恩)으로 바꿔도 의미 전달에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지금도 유럽 어느곳에서는 자기 몸에 폭탄을 두른 이슬람 청년들이 숨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시리아의 하늘 위에서는 미군 폭격기가 민간인을 향해 폭탄을 투하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한다. 미군 폭격기가 바그다드를 전격적으로 폭격할 때, 조종사들이 낄낄거리며 웃던 것을 그들이 투하한 폭탄이 바그다드의 어떤 골목에, 어린 꼬마들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들고 놀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을 어느집의 지붕을 박살내고 있는 것을 CNN은 전 세계에 생중계하였다.


이제 전쟁은 월드컵 축구경기처럼 중계 방송되는 시대까지 와 있다. 얼마 전에도 런던 브릿지에서 테러가 발생하여 민간인들이 죽었고, 영국 공군은 시리아에 투하하는 폭탄에다 테러의 보복이라는 편지글을 붙여놓기도 했다. 혹자는 내게 물을 것이다. 그것과 사은이 무슨 관계냐고?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다시 태어나면 공부를 더 잘하겠다는 유서를 써놓고 죽은 취업준비생 남자 청년, 구의역에서 자동문을 고치다가 지하철에 끼어죽은 비정규직 남자 청년, 지하철역에서 느닷없이 칼에 찔려 죽은 여자 청년, 취업이 안되어서 끝내 굶어죽은 몇 년 전의 어떤 일가족 등등, 성주에 배치되어 있는 사드, 사드 배치에 반대하여 싸우고 있는 소성리의 할머니들과 교무님들에게 과연 사은은 있는가?


이상하게도 사은은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는 사람들보다는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내려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도 한다. 언젠가 매우 부유한 어떤 교도님이 사드에 대해 보상금을 후하게 받고 성지(聖地)를 내주자고 주장하는 것을 들었다. 원불교가 사드 배치를 계속 반대하면 아예 교단을 떠나겠다는 의견도 내놓는 것을 보았다. 지금 교단적 차원에서 직면하고 있는 사은 당처는 성주 소성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환경영향평가를 하느라 약간의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끝내는 사드가 배치되고 운용될 수도 있다. 교단의 실지불공은 사드배치 반대 불공이어야한다. 그것이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사은은 사드배치를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사드를 배치하고 성지를 유린하는 것이 미군이 아니라 사은의 은혜라면 어찌할 것인가? 사은은 따뜻하고 맑고 훈훈하기만 한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냉정하고 가혹하며 탁하고 더러울 수도 있다. 그렇다. 지금은 사은의 무서움을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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