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원불교 공연문화의 지평을 열다 - 원불교 서사극‘이 일을 어찌할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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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원불교 공연문화의 지평을 열다 - 원불교 서사극‘이 일을 어찌할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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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2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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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식 교도(전 원불교문인협회장, 일산교당)

한울안오피니언(이경식).jpg


6월 6일, 국립극장에서 '이 일을 어찌할꼬'를 관람하고 나니 함께 했던 교도 두어 분이 내게 “어땠어요?” 하고 물었다. 아마 평가를 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보아주는'것이 아니라 '본'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그간 원불교 공연의 태반이 교도로서 의무적으로 혹은 격려하기 위하여 인심 쓰듯이 '보아준' 것이라면, 이번 공연은 그런 부담 없이 자발적으로 기꺼이 '본' 것이라는 뜻이었다. 또 다른 두어 분은 내게 “보면서 울었지요?” 하고 물었다. 감동 여부를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이라고 답했다. 인색해서가 아니었다. '많이'울진 않았을지라도 나는 내가 받은 감동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안다. 내 감동의 출처가 가슴뿐 아니라 머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알량한 지성의 오염된 반응방식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광고 지면을 보며 원불교서사극이란 레테르에 주목했다. 서사극이라 하면 1920년대 독일의 브레히트를 시조로 하여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연극에 반기를 든 새로운 연극 운동이다. 서사란 본래 문학 용어로서, 서사극이란 문학적 내용과 연극적 기법의 실험적 협업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1960년대 한국에서 서사극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면서 서사극 대신 실험극이란 용어를 썼던 것이다. 이윤택 연출가는 대종사 십상이란 구슬을 한 줄에 꿰고 여러 에피소드를 엮음으로써 전통극의 구성법을 탈피하였다. 아울러 종교적 메시지 전달에 주력하면서 다종의 양식을 실험적으로 사용하였다. 정면의 벽을 이용하여 그림자극을 연출하고 흑백 기록사진들을 타이밍에 맞게 배치했고, 정가와 판소리 등의 다양한 전통 음악이며 전통무술과 민속극적 춤사위 등을 동원하였다. 그러면서 '이 일을 어찌할꼬!'의 반복적 삽입으로 현대인의 방황하는 영혼을 일깨우는 메시지 전달에 유념하였다.


대종사는 흥이 많은 분이었다. 그분이 부른 가사를 보면 어디나 흥이 넘치고 '탄식가'에 조차 '춘추법려로 놀아보자' '에루화 낙화로다'등의 추임새가 등장한다. 놀랍게도 소태산문학에는 서정·서사·교술 외에 극 장르가 있다. 주목할 것이 '안심곡'이니 봉사패, 초란이패, 원숭이패가 등장하여 질펀하게 노는데 여기엔 꼭두각시놀음이나 탈춤 같은 굿판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흥타령으로 밤을 새우고 판소리(창극)와 마당극을 즐긴 소태산의 예술적 감각은 원불교 극예술의 연원이다.


이윤택도 이 무대를 결코 브레히트적인 냉철함이나 종교적 엄숙주의에 묶어 두지 않았다. 자칫 따분해지기 쉬운 성극적 분위기를 세속적 굿판으로 해방시켰다. 민속극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정서는 해학이요 에너지원은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서의 신바람이다. 해학과 신바람의 역동성이 긴장과 이완으로 교차하면서 두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대종사 역의 윤정섭과 이원희나 바랭이네 역의 김미숙의 연기뿐 아니라 출연자 모두의 세련되고 활기찬 동작과, 악사들조차 혼연일체가 된 모습은 감동이었다. 특히 이원희의 풍채와 발성법은 압도적이다. 역설적이게도, 대종사 열반에 이어지는 뒤풀이는 또 얼마나 흥겹던가.


기성인들에겐 이런 무대가 떨떠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액자무대(proscenium arch) 아닌 원형무대부터가 익숙하지 않다. 플롯의 완결성을 중시하는 전통극에 길든 이들에겐 서사극의 삽화적 구성이나 실험적 복합양식들이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의 관현악단을 동원하고 눈부신 조명과 화려한 무대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공연방식은 비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작은 공간에서 적은 비용과 자발적 참여를 통하여 즐길 수 있는 이런 공연 양식을 개발하여 국내외 교구와 큰 교당에서 순회공연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원불교문화는 물론 청소년 교화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벌써 후속작의 구상에 착수했다니 기대가 크다. 신축 중인 회관에는 상설공간을 반드시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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