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은 무엇이고 법계는 또 무엇인가 (교의품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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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은 무엇이고 법계는 또 무엇인가 (교의품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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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0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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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 작가의 ‘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 23-2 l 정법현 교도 (북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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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법계는 언뜻 보면 형상이 없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냥 텅 비어 있기 때문에 형상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허공은 온갖 색(色)으로 가득 차 있고, 법계는 공으로 텅 비어 있다. 허공을 들여다보면 온갖 영가들과 귀신들과 원혼들이 얼마나 빽빽하게 모여 있는 지 그야말로 송곳 하나 꽂을 틈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과학적으로 보아도 허공이라고 불리는 지구 대기권은 질소(N2) 78.084%, 산소(O2) 20.946%를 비롯하여 아르곤과 이산화탄소 등 미량의 여러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물질들이 전체 대기의 99.98%을 차지하고 있다. 질소나 산소 같은 기체들 역시 형상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색에 속한다. 결국 허공은 온갖 종류의 색으로 가득 차 있으며 기체라는 형상을 띄고 있다.


반면에 법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법계는'없다'로 구성된 공의 상태이다. 한 이름도 없고, 한 형상도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죽고 나는 것도 없고, 부처와 중생도 없고, 허무와 적멸도 없고, 없다 하는 말도 또한 없는 것이며,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무무역무무의 진리로 텅 빈 세계가 바로 법계인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허공과 법계를 이렇게 분리해도 되는 것인가? 결국 허공은 물질이고 법계는 정신이라는 이분법적 사유로 귀결되고 마는 것인가? 나는 자주 '쓰고 있는 문장' 앞에서 번뇌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끝없이 의두를 품게 되고 질문들을 쏟아내게 된다. 나는 무지(無知)하다.


무지한 내가 또 묻는다. 사은당처와 허공법계는 분리되어 있는가? 만일 사은당처가 개벽되지 않은 선천(先天)으로 상극의 투쟁 상태인데도 허공법계를 개벽된 후천(後天)의 세계라고 해도 되는 것인가? 허공법계가 진공묘유의 진리 속에서 상생하고 있는데 사은당처는 서로 죽고 죽이는 상극의 상태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일 수 있는가?


아니다. 사은당처가 상극의 투쟁 상태인데 허공법계가 상생의 평화 상태일 수는 없다. 사은당처가 상극이면 허공법계도 상극이고, 사은당처가 상생이면 허공법계도 상생이다. 그렇다. 사은당처와 허공법계는 치밀하게 연기(緣起)되어 있다. 연기되었다는 것은 사은당처가 상극의 상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연기는 유동적이다. 그 어느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진리는 녹지 않는 얼음이 아니다. 녹는 얼음이어야 참된 진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리는 철저히 유목적으로 연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리의 유목성은 진리의 절대주의 혹은 절대성을 거부한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일부일처제는 도덕의 기준도 도덕적 절대성도 아니다. 그저 일부일처제 문화권의 결혼 기준일 뿐이다. 지구상에는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다처다부제, 모계 등 다양한 결혼 문화가 혼재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에게는 독립운동가지만 일본에게는 테러범에 불과하다. 진리는 이처럼 허약한 절대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아니 우주의 만물은 저마다의 사은당처와 허공법계를 동시적으로 갖고 있다. 각 개인의 사은당처와 허공법계는 지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다. 나아가 그 개인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들도 저마다의 사은당처와 허공법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원불교의 '현하 사은당처'중의 하나가 성주 성지 보존이며 사드배치 반대라면, 원불교의 허공법계는 뭇 생명이 서로 상생하는 참된 평화의 세계를 이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나의 허공법계'를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허공법계'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해보는 것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저마다 상상하고 꿈꾸는 그 허공법계의 수준과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현하의 사은당처'이다. 현하의 사은당처에 올리는 실지불공을 통해 상극과 죄복이 개벽되고 부처의 땅이 될 터 인데, 그것을 어찌 진리불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실지불공이 지극해지면 진리불공이 된다. 불공은 염불과 기도, 독경과 선정에만 있지 않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노동하고 작업하는 것, 사리를 연구하고 수양하고 투쟁 하는 것도 불공이다. 만사(萬事)가 불공인데 그것이 실지든 진리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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