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고,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교의품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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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고,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교의품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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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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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 작가의 ‘인문학으로 대종경 읽기’ 24 l 정법현 교도 (북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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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서부전선은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치열하게 맞붙은 곳이었다. 두 나라의 군대는 평원을 마주하고, 길고 긴 참호를 파고 그 속에서 전투를 벌였다. 소위 진지전(陣地戰)이다. 진지를 파고 대기하고 있다가 상대방의 진지를 향해 일제히 돌격하는 원시적인 방식의 전투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전개되면서 군사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초기에는 '돌격 앞으로'의 수준을 면하지 못했다.


유럽의 전쟁에는 전투부대마다 목사나 신부가 종군했다. 그들은 아침마다 전투가 개시되기 전에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저 간악한 독일군의 무리를 물리치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프랑스의 젊은 병사들에게 당신의 용기를 주셔서 하나님의 병사로써 전투에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프랑스에 가득 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똑 같은 시간에 독일군 진지에서도 목사가 기도했다. 내용은 프랑스 군의 목사가 기도한 것과 똑 같았다. 다만 '저 간악한 프랑스군의 무리' 라고 상대방을 지칭하는 것만 달랐을 뿐이었다. 그들의 기도는 간절했다. 하나님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었을까?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와 달리 전장의 풍경은 참혹했다. 젊은이가 다른 젊은이를 향해 총을 쏘았고 칼로 찔렀고 돌로 머리를 쳤다. 그 젊은이들은 죽는 순간, 하나님과 어머니를 찾았다.


기독교에 기도가 있다면 원불교에는 심고가 있다. 법신불사은을 향해 마음으로 고(告)하는 것이 심고다. 마음으로 묵상하며 올리는 서원을 심고라고 하고, 말로 서원을 올리는 것을 기도라고 한다. 그러나 말은'마음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마음…에는 청탁(淸濁)이 있다. 마음의 청탁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깨끗하다가도(淸) 깨끗하지 않고(濁), 깨끗하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깨끗해진다. 대각전에서 스승님의 말씀을 받들 때에 교도들의 마음은 깨끗해지고 있거나 깨끗한 상태다. 그러나 가르침이 끝나고 공양간으로 오면 떡을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새치기를 하기도 하고 손을 쑥 뻗어 떡을 움켜쥐기도 한다. 방금 전의 청정한 마음이 순식간에 탁한 기운에 물드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이란 경계에 따라 매 순간 그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심고를 하거나 기도를 할 때는 특별히 목욕재계를 하거나 심호흡을 길게 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돌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심고에는 유념할 사항이 있다고 하여 첫째, 자력과 타력을 겸해야 한다. 둘째, 세상과 도반들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심고해야 한다. 셋째, 거짓으로 심고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세 가지를 유념하고 심고해야만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허공법계를 감동시키지 못하여 감응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자력과 타력을 겸해야 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몸으로 실천해야한다는뜻이다. “그마음을다하는자는 성(性)을 아니, 그 성을 알게 되면 하늘을 알게 된다.”라고 맹자가 말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고, 성을 안다는 것은 성품자리에 가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허공법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방언공사를 하지 않았으면 혈인기도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방언공사는 단순히 물질만 개벽시킨 게 아니다. 그 작업 자체가 이미 기도였다.


둘째, '세상과 도반과 모든 사람을 위해 심고해야 한다는 것'은 개인의 기복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신앙생활에서 개인의 기복을 서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리(自利)를 먼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리(自利)하지 아니하면 이타(利他)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리와 이타는 순서대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을 위한 기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다.


셋째,' 거짓으로심고해서는안된다'는 너무도 당연하여 더 붙일 말이 없을 정도다. 가령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 자체는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고 취하려는 거짓된 욕망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거짓인 것이다.


심고하며 사는 삶은 아름답다. 하지만 매 순간 경계를 당할 때마다 혹은 마음의 청탁이 바뀔 때마다 '나는 왜 이 모양이지?'라며 포기하지 말고 계속 심고해야 한다. 그래야 겨우 하루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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