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칼럼] 단전주로 행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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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칼럼] 단전주로 행복 찾기
  • 관리자
  • 승인 2017.08.1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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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관응 교무 (경남교구 신현교당)

육관응 교무님.jpg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

어느새 입추(立秋)가 지나고 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게 한다. 간혹 늦더위가 있기는 하나 서늘하게 부는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다. 밤에 교당 잔디밭을 거닐다 보면 더위가 한발 물러선 것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동안 간이 의자에 앉아 별을 쳐다보니 며칠 전에 소화한 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중 하나를 잡아 보니 8월 초순에 지리산국제훈련원에서 진행된 제 13회 활선훈련이다. 단전주를 지도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공부인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열정이 법당에 넘쳐났다. 이 이면에는 선을 하다가 중단했거나 선을 계속하고 있어도 점검 받을 데가 마땅치 않는데서 벗어나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번 훈련에서 그 의문점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들 공부인들은 선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걸기도 했다. 너무 어렵게 지도받은 기억만 남아 있다고 했다. 문답을 하다 보니 그동안 단전주 선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몸으로 체험하는 느낌이 약하다는 것과 형식은 어느 정도 갖추었으나 그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분명 정전 단전주 선을 배웠을 것인데 단전주 선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또한 단전주 선에 대해 앉아서 하는 선인 좌선만이 단전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분명 무시선법에서 “근래에 선을 닦는 무리가 선을 대단히 어렵게 생각하여 처자가 있어도 못할 것이요, 직업을 가져도 못할 것이라 하여, 산중에 들어가 조용히 앉아야만 선을 할 수 있다는 주견을 가진 사람이 많나니, 이것은 제법이 둘 아닌 대법을 모르는 연고라, 만일 앉아야만 선을 하는 것일진대 서는 때는 선을 못 하게 될 것이니, 앉아서만 하고 서서 못하는 선은 병든 선이라 어찌 중생을 건지는 대법이 되리요.”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무시선법에서는 선을 서서도 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도 인식 속에서는 앉아서만 하는 것이 최상인 것으로 알고 서서하는 선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무릎 관절이 아픈 사람이나 발목에 이상이 있을 경우 그래도 앉아 있기만을 강조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단전주 선이란 앉아서도 할 수 있지만 서서도 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책을 보면서도 할 수 있다. 유무식 남녀노소는 물론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에서도 가능하다. 단전주는 걸으나(行), 머무르거나(住), 앉으나(坐), 누우나(臥) 마찬가지다.


또한 말하는 것(語), 입 다물고 있는 것(默), 움직이는 것(動), 가만히 있는 것(靜)에서도 단전주를 할 수 있다. 단전에 주하다 보면 의식이 확충된다. 의식이 강화되면 우주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다.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실시품 2장에서 “저 바위 속에 금이 든 줄을 알았거든 내가 먼저 채굴하여다가 그것을 광채 있게 쓰면 사람들이 나의 부유해진 연유를 알고자 하리니, 그 알고자 하는 마음의 정도를 보아서 그 내역을 말하여 준다면 그 사람들도 얼마나 감사히 그 금을 채굴하려 할 것인가. 이것이 곧 사람을 제도하는 묘방일까 하노라.”고 하셨다. 이같이 천지의 위력을 갖다가 쓰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것을 증거로 나투면 된다.


이번 활선 훈련이 끝난 후 공부인들의 감상담에서자신감이묻어났다. '하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렇다. 선은 어디서든 시간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 행복도 여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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