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1만 6000km, 유라시아 횡단 마라톤에 도전합니다 - 이준 열사 서거 110주기, 내가 유라시아 횡단하려는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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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1만 6000km, 유라시아 횡단 마라톤에 도전합니다 - 이준 열사 서거 110주기, 내가 유라시아 횡단하려는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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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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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성(명구, 중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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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110년 전 이준 열사처럼 헤이그로 '평화의 특사'가 되어 날아간다.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열사기념관에서 출발해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 횡단 마라톤에 도전한다(1년 2개월 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잃어버린 제국의 왕이 임명하여 외교권을 인정받지 못한 슬픈 특사처럼 스스로가 임명한 짝퉁 특사는 외교관의 권리는 누리지 못하겠지만, 행복한 특사가 될 것이다. 시민들이 임명해 주어서 힘을 실어주었고 오는 8월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성대한 출정식을 한 후 출국할 것이다.


이준 열사가 이루지 못한 110년 묵은 '자주독립'의 꿈을 가슴에 안고 당당하게 출국할 것이다. 나가서 1만6000km, 16개국을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두 다리의 힘으로만 달리며 지난겨울 우리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어가는 장면들을 세계시민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전쟁 없는 세상의 꿈을 나누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세계평화를 얼마나 앞당기게 될지를 토론하고 오겠다.


110년 전 당시 유럽은 정부 차원에서는 식민지 각축전이 벌어졌지만, 또한 시민운동이 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헤이그에는 시민운동가 및 언론인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었다. 헤이그특사 일행은 만국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언론매체들을 향해 장외 외교활동을 펼쳤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서방언론은 한국의 현실에 대해 상세히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1907년 7월 14일 이준은 의문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56년 만인 1963년 그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와 수유리에 안장되었다.


난 게으름뱅이였고 나태했다. 좀처럼 긴장의 끈을 조여매지 못했다. 간혹 조여 매면 너무 조여서 끊어지곤 했다. 난 늘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내일 할 일을 다음 주로, 다음 달로 미루었다. 그러나 이제 자주평화통일의 문제는 더 이상 내일로, 다음 달로, 내년으로 미룰수가 없다. 사실 이 일은 아버지 세대에서 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들은 이 커다란 짐을 아예 다음 세대로 미뤘다.


그렇다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느라 고생이 많았을 우리 아버지 세대를 싸잡아서 게으름뱅이고 나태했다고 몰아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 이 일은 고스란히 우리 세대가 떠맡고 말았다. 다음세대로 넘길 일이 아니다. 각 세대는 각 세대가 떠맡아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세상에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운명적인 책무라는 것이 있다. 바로 자주평화통일을 이루어 내야 하는 일이다.


평화는 모든 가치에 우선하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 어떤 무엇보다도 생산적인 활동이며, 평화는 아름답고, 평화는 언제나 옳다. 평화는 자주적인 힘으로 지켜낼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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