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그 길에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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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그 길에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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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2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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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31) ㅣ 조휴정 PD(KBS1 라디오 PD,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조동진'겨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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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조동진 노래는 일종의 치료제입니다. 뭔가 마음이 어수선할 때, 특별한 일 없이 외롭고 기분이 처질 때, 세상의 소음에 지쳤을 때, 저는 조동진을 찾아 듣습니다. 몇 번을 다시 듣고 또 듣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더 기분이 다운될 것 같은데 오히려 상처 난 마음에 그의 낮은 목소리가 도포되면서 죽어가는 세포가 보슬보슬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느 특정한 노래가 그렇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조동진이면 됩니다. '다시 부르는노래', '겨울비'로시작해서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작은 배', '어떤날', '행복한 사람'등 우리가 모두 아는 노래도 좋지만 가끔은 1집, 2집 통째로 듣습니다. 잘 모르는 노래도 있습니다. 느낌이 비슷비슷해서 외워지지 않는 노래도 꽤 됩니다. 그래도 그 자체로, 집안에 조동진의 낮고 단조로운 그러나 참 따뜻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조동진, 참 옛날가수입니다. 1947년생, 1967년 데뷔, 1978년 첫 앨범 발표, 숫자만으로도 원로가수 반열입니다. 그런데도 조동진 노래는 언제나 청년입니다. 노래가 전혀 올드(old)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클래식이 되어 더 격조 높게 들립니다. 모든 노래가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노래 중 딱 한 곡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지만, '겨울비(조동진 작사 작곡)'에 담긴 사연이 요즘 더 와 닿습니다. 이 노래는 겨울비 내리던 어느 날,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는 길에 떠오른 곡이라고 합니다.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바람 끝 닿지 않는 밤과 낮 저편에 내가 불빛 속을 서둘러 밤길 달렸을 때. 내 가슴 두드리던 아득한 그 종소리”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갈 때의 그 마음은, 그때 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오늘 아침까지도 안녕히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던 가족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그건 현실이 아닌 겁니다.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은 겪을 때는 그 슬픔과 상실감을 실감 못합니다. 어쩌면 눈물 흘릴 시간도 없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인데도 복잡한 행정적, 현실적 절차를 거친 후에야 제대로 슬퍼할 시간을 허락하니까요.


우리는 몇 년 전, 그렇게 갑자기 사랑하는 자식들과 헤어진 부모들을 봤습니다. 4월의 바다는 아직 겨울이었을 겁니다. 남의 일인데도, 이제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눈가가 욱씬 합니다. 바람 끝닿지 않는, 밤과 낮 저편으로 떠난 피붙이, 그리고 아내, 남편, 가족… 그분들 뿐 아니겠죠.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들로 갑자기 내 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에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얼마나 많이 복기했을까요, 이별의 순간을 맞지 않았을 상황들을, 그때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면, 내가 조금만 일찍 갔더라면, 조금만 빨리 병원을 옮겼더라면… 부질없는 상상 속에서 괴로움과 그리움이 교차되는 나날들….


굳이 위로하자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니 영원한 인연이 없듯, 영원한 고통이나 그리움도 없을 겁니다. 우주의 차원에서 보면 2, 30년 먼저 갔다고 엄청난 것도 아닐 겁니다. 그래도 안녕,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난 가족은 떨쳐낼 수 없는 아픔입니다.


조동진도 소리 내어 웃는 일이 있을까요? 있겠죠? 노래만 들으면 절대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떻게 자라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면 이렇게 무겁고 깊고, 따뜻한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걸까요. 최근, 암 투병 중에도 20년 만에 무대에 선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위대한 음악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다시, 조동진을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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