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언제나 그리운
상태바
문득, 언제나 그리운
  • 관리자
  • 승인 2017.09.20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마워요, 유행가」(32) ㅣ 조휴정 PD(KBS1 라디오 PD,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김광석 '서른 즈음에'

유행가-김광석.jpg

김광석은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눈가에 주름이 가득 잡힐만큼 시원스럽게 웃는 모습이 철없는 대학생 같기도 하고 수확을 앞둔 젊은 농부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김광석은 수다쟁이였습니다. KBS 본관 5층 휴게실에서 거의 매일 볼 수 있었던 김광석은 늘 누군가와 어울려 커피를 마시고 유쾌하게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오픈된 휴게실에 그렇게 오래 자주 나타나는 스타급 연예인은 김광석이 유일했습니다. 공연장에 가도 싱글벙글 공연이 시작되기 20여분을 남겨놓고도 지인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공연이 곧 시작되지 않느냐고 걱정을 하면 “나야 공연이 뭐 생활이니까” 하면서 씨익 웃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90년대 초부터 이미 김광석은 대학로 라이브의 황제였습니다. 라이브 공연 1천회라는 어마어마한 기록도 갖고 있던 그가 96년 1월,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났습니다. 그때 팬들이 받은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64년 1월생이니 너무도 짧은 32년의 삶이었죠. 평소의 그가 워낙 밝고 건강해 보였기 때문에 '자살' 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저는 그의 공연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의 공연은 구성도 무대도 무척 단순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감성에 딱 맞는 히트곡이 워낙 다양해서 듣고 있으면 영화 몇 편 보는것 같았죠. 그는 목소리도 타고났습니다. 컨디션이 별로 안 좋다는 날도 쭉쭉 뻗어나가는 고음은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소탈하게 팬들 곁에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노래가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거리에서', '이등병의편지', '일어나', '잊어야한다는 마음으로', '서른 즈음에', '말하지못한내사랑', '기다려줘', '그녀가처음울던날', '나의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등등 수많은 그의 히트곡 중에서 어느 한곡을 골라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랑 노래는 사랑노래대로, 인생 노래는 인생 노래대로 울림이 깊으니까요.


하지만 딱 한 곡을 고르라면 저는 나이가 들수록 '서른 즈음에(강승원 작사 작곡)'가 구구절절 와 닿습니다. 쉰 즈음에, 예순 즈음에로 바꿔 불러도 감성이 통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한없이 쓸쓸하고 허무한 우리 인생을 이 한 문장보다 더 아프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내가 이 세상에 없어져도 먼지만큼의 변화도 없을 텐데 우리는 왜 이렇게 뭐 하나도 놓아버리기가 힘이 든걸까요? 하지만 그렇게 덧없는 인생이기에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 할 뿐, 아등바등 집착할 것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하루에 몇 번을 들어도 여전히 좋은 김광석의 노래. 어둑어둑 하루가 저물때도,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때도, 사랑에 빠졌을 때도, 너무 아픈 이별을 겪을 때도 그의 노래는 우리 마음에 들려옵니다. 그에 관한 다큐 영화를 보고 마음이 울적했지만 젊은 친구들이 여전히 그의 노래를 부르고 사랑하는 장면에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김광석은 잊혀 지지 않을 겁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