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름다운이웃이 되어가는교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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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아름다운이웃이 되어가는교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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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1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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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법실천의 현장을 찾아

교법실천(윤영원).jpg

원불교 정책연구소에서 실시한 원기 99년 원불교 사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처음 조사했던 원기 95년보다 원불교에 대한 인지도가 6.9% 낮아졌습니다. 이는 원기 98년과 비교해 봐도 7.1% 낮아진 포인트이고, 전혀 모른다는 사람 또한 28%에서 35.2%로 증가했다는 원불교 신문 기사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어! 이게 왜 이렇지?”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원불교가 4대 종교가 되었고, 군종교화도 잘 된다고 하고, 원음방송은 전북, 부산, 서울, 광주, 대구까지 개국하고 이제 TV도 생겨나서 친구들이 '원불교 전도사'라고 부를 때 우쭐대던 나를 위축되게 하는 전혀 반대의 결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원불교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니!”이를 어쩌면 좋지 하는 근심이 마음 한편에 있을 무렵 교무님께서 “만인 불사로 이루어진 이 송천교당이 교도들 법회시간에만 이용되는 것은 큰 빚을 지는 것은 아닐까요?”라는 말씀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우리 교당은 우리만의 공간이 아니었지?”라는 자각은 많은 변화를 시작하게 했습니다. 우선 교당 앞에 다른 차들의 주차를 거부하는 붉은 쇠사슬부터 걷어냈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던 주차장 셔터를 올리고 그 안에 있던 화장실까지 함께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비행 청소년이나 노숙자들의 아지트가 되는 건 아닐까? 주차장이나 화장실이 담배꽁초 등으로 엉망진창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하는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어차피 교당은 많은 사람들의 권선불사로 이루어진 공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송천교당 개방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교도이면서 모 방송국의 PD로 계시는 분에게 교당에서 북 콘서트를 열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취지는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원불교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았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완전 '대박'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이 시점에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선뜻 오케이를 했습니다.


이것이 「취업난과 경제난으로 웃음과 사랑을 잊고 사는 젊은이들을 응원하기 위한 코믹 맞선 콘서트인 최욱의 북 콘서트」였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몇 명이나 올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젊은 청춘 남녀 300여명이 밀려들어오는 그 모습이라니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감동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청소년 교화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긁어주는 장을 열어 놓으니까 그렇게 많은 청년들이 구름같이 밀려오는 광경을 경험한 뒤로 교당 교화협의회에서는 주민들이 교당에 친해질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인 교무님은 노래교실에 대한 주민들의 욕구가 많아 대기자가 많다는 정보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당은 일찍이 선견지명이 있어 건축할 때부터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였고, 의자도 놓고, 주변에 민가도 적어서 노래교실을 운영하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습니다.


그래서 원기 100년 3월 '행복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차별화된 신바람 건강노래교실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선 요가와 오행체조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간단한 명상으로 편안한 마음을 챙겨 신바람 나게 노래를 하고나면 매우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을 보며 우리들의 행복지수도 커져갔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일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재미있는 노래강사를 초빙해서 진행했지만 지역주민들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원불교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잖아요”, “거기 가면 원불교 믿으라고 하는것 아니에요?”, “아유. 이상할것 같아”이런 말들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며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괜히 헛수고하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플래카드를 보거나 노래 소리에 들어와 보기도 하고, 우연히 왔던 분들의 입소문에 의해 서서히 교당의 문턱은 낮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더구나 '성북소리'등 지역신문에 홍보를 하고난 후의 반응은 뜻밖에도 매우 뜨거웠습니다. 장위동과 월곡동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오기 시작해서 어느 날엔 13명의 신입생이 한번에 등록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호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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