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가을걷이와 단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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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가을걷이와 단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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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2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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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관응 교무 경남교구 신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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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쉬운 것이라도 한해 두해 꾸준한 정성이 있어야 한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산과 들판에 가을이 매달려 있었다. 거제시 동부면과 거제면을 순례하면서 농부들의 부지런함을 목격했다. 논에는 콘바인으로 벼를 베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고 마을 어귀 감나무에 홍시를 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정겨웠다. 맑고 쾌청한 가을하늘 아래 일하는 농부들의 분주한 모습들을 보면서 그동안의 노력의 결실을 얻는 듯했다.


단전주 선도 마찬가지다. 정성을 들인 만큼 얻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쉬운것이라도 한해 두해 꾸준한 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세월을 거쳐야 에너지의 원천이 만들어 진다. 계속 증폭된 그 에너지가 온 몸을 휘감고 돌 때 절로 흥겨워지고 합장이 되어 진다. 형식적으로 손을 모으는 행위가 아니라 오롯한 마음으로 합장을 하게 된다. 이것은 얻어지고, 이루어지고, 되어짐에 대한 감사 표시다.


대산종사께서는 법문집 1집 수신강요에서 분명하게 밝혔다. “끝까지 구하라 얻어지나니라. 진심으로 원하라 이루어지나니라. 정성껏 힘쓰라 되나니라”


그러나 감사의 표시를 자연스럽게 하기 보다 아직까지 헤매는 공부인들이 많이 있다. 파종을 하지 않고 그저 얻으려고만 하고 있다. 자기 주머니는 비워놓고 남이 얻은 것에 대해 눈치를 준다. 아닌 말을 하면서 구업(口業)을 짓고 있다. 이렇게 한다고 공부가 성취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진리 감응은 아무 노력 없이 그냥 되어지지 않는다.


정산종사께서는 도운편 4장에서 “새로운 큰 도운이 돌아오고 있건마는 그 도운을 받고 못 받는 것은 오직 각자의 마음 가지기에 달려 있는 것이 마치 방송 시간이 되어 방송을 하고 있건마는 듣는 사람이 수신 조절을 하지 않으면 그 방송을 들을 수 없는 것 같고, 농사 시기가 돌아와 대풍(大豊)의 전조가 보이지마는 농부가 때에 맞추어 씨 뿌리고 가꾸지 아니하면 수확을 얻을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다행스럽게도 단전주는 수신 조절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파종하는 방법과 키우는 방법, 수확의 결과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려주고 있다.


이렇게 알찬 수확을 거두게 하는 단전주 선의 주체성에 대해 대종사께서는 「대종경」수행품 14장에서 제시했다. “근래에 선종 각파에서 선의 방법을 가지고 서로 시비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가운데 단전주(丹田住)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 하고 화두 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 하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대종사께서 「정전」 '좌선법'에서 단전주의 필요에 대해 밝혀준 이유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사심 없는 마음으로 정성을 지극히 하면 반드시 감응하게 하는 것이 천지자연의 조화다. 이를 통해 단전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대종사께서 「대종경」 인과품 17장에서 밝힌 간명한 해법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농부가 봄에 씨 뿌리지 아니하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나니 이것이 인과의 원칙이라, 어찌 농사에만 한한 일이리요.”라는 법문을 명심하는 이유다.


이제는 단전주를 오롯이 행해야 한다. 행은 뒷전이고 쳐다만 보고 있다고 진리가 선물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고 간절함이 묻어나야한다. 가을의 수확물들이 오롯함의 결과를 증명하고 있다. 공부인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이 가을에 간명하고 자명한 단전주를 지극한 정성으로 행하다보면 여기저기서 툭툭 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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