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산책] 밥그릇과 국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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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산책] 밥그릇과 국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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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07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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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무의 ‘유림산책’(儒林散策) ⑤ | 박세웅 교무(북경대 철학박사)

박 교무의 유림산책(새연재-옛날대종경자리에).jpg

어느 날 정토(正土, 원불교 교무의 아내를 일컫는 말)와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밥을 퍼달라는 정토의 말에 그릇 하나를 집어 들고 밥을 담았다. 그것을 본 정토는 국그릇에다가 밥을 담았다고 나무란다. 얼핏 보기에는 다 같은 그릇 인 것 같았는데 정토에게는 국그릇에는 국을 담아야 하고 밥그릇에는 밥을 담아야하는 나름의 각기 다른 용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정토에게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고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라고 말했다가는 어쩌면 그 뒤로 밥을 얻어먹기가 힘들어졌을 것이다. 한 마디 대꾸 없이 그릇을 바꿔 담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어찌되었든지 그릇이란 누군가에는 각각 그 용도에 맞게 사용되어야지 서로 바뀌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어느 날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저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너는 그릇(器)이다”라고 답한다.(「논어」, 공야장) 평소 공자는 자공이 안회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회가 인자(仁者)의 상징이라면 자공은 지자(知者)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자공의 재주는 특별했다. 그러므로 “어떤 그릇입니까?” 하고 이어지는 질문에 공자는 “나라의 제사에 사용될 만큼 귀중한 그릇[瑚璉]이다.”라고 답하게 된다. 하지만 “군자는 그릇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君子不器]”(「논어」, 위정) 라고 한 공자의 말을 상기해 보면, 자공은 귀중한 그릇과 같은 존재라고는 할 수 있어도 결코 군자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불기(不器)를 '그릇처럼 어느 한 용도나 방면에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 국그릇에는 국만 담고, 밥그릇에는 밥만 담아야 한다는 기질적인 국한을 뛰어넘는 것이 곧 군자의 중요한 덕목이 되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멀티 플레이어와 같다.


「중용」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군자는 현재의 처한 바에 따라 행할 뿐 그 밖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대로 행하며, 빈천에 처해서는 빈천대로 행하며, (중략) 군자는 처하는 곳마다 자득(自得)하지 않음이 없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공자가 불기(不器)를 통해 가르치고자 했던바가 아닐까! 공자가 말한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의미는 한 가지 기술이나 재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기질적인 측면만 아니라 그 마음이 어느 한 편에 국한되거나 어느 한 곳에 집착되지 않은 원만구족(圓滿具足)한 경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대종사는 법위등급 중에서 원근친소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일체생령을 위하여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사람의 위를 '출가위'라고 하였다. 이에 대산종사는 출가위는 심신을 출가한 자리로서, 아집(我執)·법집(法執)·소국집(小局執)·능집(能執)을 지어서 그 속에 머무르면 출가위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집이란 대아를 발견하지 못하고 소아에 집착하는 것이며, 법집이란 법에 얽매이고 집착하는 것으로 법박(法縛)과도 같은 말이다. 소국집이란 마음이 트이지 못하고 작은 한편에 집착하는 것이며, 능집이란 자기가 잘하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상의 네 가지 국한과 집착에서 벗어난 자리가 곧 공자가 말한 불기(不器)의 자리일 것이다. 이 같은 입장에서 보면 군자는 곧 출가위의 성인이며, 집(家)을 떠난다는 것은 곧 집(執)을 떠난다는 의미가 된다.


“불기(不器) 안에 유기(有器) 불기(不器)하니, 어서 들어와 국에 밥 한 끼 하고 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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