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의노래,「 일원상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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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의노래,「 일원상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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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0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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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107)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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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 동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원기 26년(1941) 1월 28일 오후 8시에 공회당 선방에서 소태산 대종사, 주산 송도성에게 칠판 한 가운데에 줄을 치게 하고 오른쪽에는 '게송(偈頌)'을 왼쪽에는 '동정간불리선'을 쓰도록 불러 주시고, 주산 종사가 이를 다 받아쓰자 게송과 동정간불리선 공부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 주십니다.


소태산 대종사 게송을 내리시며 “옛 도인들은 대개 임종 당시에 바쁘게 전법게송을 전하였으나 나는 미리 그대들에게 이를 전하여 주며, 또는 몇 사람에게만 비밀히 전하였으나 나는 이와 같이 여러 사람에게 고루 전하여 주노라. 그러나 법을 오롯이 받고 못 받는 것은 그대들 각자의 공부에 있나니 각기 정진하여 후일에 유감이 없게 하라.”(부촉품 2장) 부촉하십니다. 공전은 법의 민주화요 각자가 법의 주인공으로, 법의 수동자가 아니라 능동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有)는 변하는 자리요 무(無)는 불변하는 자리나,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리가 이 자리며, 돌고 돈다, 지극하다 하였으나 이도 또한 가르치기 위하여 강연히 표현한 말에 불과하나니, 구공이다, 구족하다를 논할 여지가 어디 있으리요.”라 부연하시며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眞體)이니 사량(思量)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고 말고 관조(觀照)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 당부하십니다.(성리품 31장)


게송은 '일원상의 게송' 입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함축한 시(詩)이며 노래로, 일원상의 진리를 유와 무, 구공과 구족이란 암유(暗喩)의 메타포(metaphor)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유라는 메타포는 변하는 자리라면 무라는 메타포는 불변하는 자리라고 암유한 것입니다. 이를 「일원상 서원문」의 유상은 「게송」의 무로써 불변하는 자리이며, 「일원상 서원문」의 무상은「게송」의 유로써 변하는 자리입니다. 무와 유, 유상과 무상은 일원(一圓)의 양면입니다.


<유는 무로>는 천차만별로 변하는 유(有) 자리는 또한 불생불멸하여 항상 그대로 있는(常住不滅) 불변의 무(無) 자리로,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그대로 그러한(如如自然) 차원의 무어라 규정하고 헤아릴(量) 수 없는 무량세계를 전개합니다.


<무는 유로>는 불변하는 무(無) 자리에 바탕하여 무궁하게 변화하는 유(有)자리로, 진급과 은생어해로 선변(善變)하기도 하고 강급과 해생어은으로 악변(惡變)하기도 하여 한량없는 무량세계를 전개합니다.


<돌고 돌아>는 유와 무가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이 있어서 그것이 서로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로 유와 무가 호상침투되어 원융무애한 것입니다. 원래 하나를 유로 보면 이렇고 무로 보면 저런 것으로, 유와 무가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은현작용이 자재한 것입니다.


이러한 유와 무가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의 분별이 끊어진 자리에 들게 됩니다.


그러면 <유와 무가 구공>이라는 것으로, 유의 변하는 자리와 무의 불변하는 자리라는 규정에 묶이지 않기에 구공이라 합니다. 유의 변하는 자리랄 것도 없고 무의 불변하는 자리랄 것도 없는 일체의 규정이 끊어진 '언어도단의 입정처'인 진공체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구공 역시 구족>입니다. 유의 변하는 자리와 무의 불변하는 자리라는 국한이 없는 구공 역시 내용면에서 보면 유의 변과 무의 불변의 이치로 완연히 드러나는 씨알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즉 유의 변하는 이치와 무의 불변하는 이치가 호상침투해 있으면서, 또한 유의 변과 무의 불변을 초월하면서 그 초월된 구공 자리에는 유와 무가 구족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불변의 유·무 자리가 구공(俱空)이면서 구족(具足)인 것입니다. 즉 유이면 무이고, 무이면 유이고,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으면서, 능히 유하고 능히 무한 '유무초월의 생사문'입니다. 문(門)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면서 안이면 밖이고 밖이면 안으로 안도 되고 밖도 되는 초월과 내포를 관통합니다. 그러므로 생사문은 생사를 초월하면서도 생사를 나투는 자리(門)입니다.


소태산 대종사“유와 무가 돌고 돌아 구공이 되고 구족이 되는 이치를 깨치게 되면 우주의 주인이 되고, 걸리고 막힐것이 하나도 없게 되며, 임운등등하고 등등임운하게 세상을 자유자재로 살아가게 된다.” 하셨습니다. 무분별지인 성품의 진체를 관조하면 일원상 진리의 노래인 「게송」전체가 훤히 드러나고 우주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경영하게 되나, 이를 분별사량하면 삼천리 밖으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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