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처불상과 산부처
상태바
처처불상과 산부처
  • 관리자
  • 승인 2018.01.13 1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튼교무의 정전산책 (108)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방길튼교무님.jpg

「정전」 '불공하는 법'에 “우주만유는 곧 법신불의 응화신이니, 당하는 곳마다 부처님(處處佛像)이요, 일일이 불공법(事事佛供)이라, 천지에게 당한 죄복은 천지에게, 부모에게 당한 죄복은 부모에게, 동포에게 당한 죄복은 동포에게, 법률에게 당한 죄복은 법률에게 비는 것이 사실적인 동시에 반드시 성공하는 불공법이 될 것이니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태산 대종사 봉래정사에 계실때, 어떤 노인 부부가 실상사 부처님(불상)에게 불효하는 며느리가 자신들을 잘 봉양토록 바라는 불공을 드리러 간다하니, 어찌 등상불에게 불공할 줄은 알면서 산부처에게는 불공할 줄 모르시냐며 노인장 집에 있는 며느리가 바로 산부처라 하시며 효도하고 불효할 권능이 그 며느리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교의품 15장)

# 법신불의 응화신과산부처


「정전」 '자력양성'의 '과거의 타력생활 조목' 중에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녀에게 의지하였으며, 또는 권리가 동일하지 못하여 남자와 같은 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며, 또는 사교의 권리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재산에 대한 상속권도 얻지못하였으며, 또는 자기의 심신이지마는 일동일정에 구속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니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여성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원칙을 강제적으로 맹목적으로 지키고 살아야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말에, 결혼해서는 남편의 말에, 남편 사후에는 아들의 말에 따라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여성은 남성권력에 종속된 종속자아였습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살 수 없었습니다. 만일 당시에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권리를 주장했다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인간 각자의 욕망이 긍정되고 자신의 고유한 내면의 가치와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서야 자력이라는 권리가 인지되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집단(공동체)의 일원이었지 개인 각자가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특히 남성에 비해 여성의 권리는 더욱 험난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미래의 처처불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며, 남녀권리동일의 자력양성은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만일 모든 존재를 법신불의 응화신으로, 처처불상으로, 효도하고 불효할, 혹은 죄주고 혹은 복줄 수 있는 산부처로 여긴다면 내 앞의 인연은 '나와는 다른 존재'로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나와는 차이와 다름을 갖고 있는 자기 욕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과 생각이 상대방과 부딪칠 때 긍정도 거부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타자(他者)입니다.


노부부는 며느리가 효부가 되기를 바라지만, 며느리는 자식건사와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할 것입니다. 이 관계에서 노부부에게 며느리는, 혹은 며느리에게 노부부는 타자가 됩니다. 노부부가 며느리의 욕망에 맞추기도 어렵지만, 반대로 며느리가 시부모의 욕망에 강제될 수도 없습니다. 이 두 관계는 각자 고유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당연히 갈등과 긴장의 관계에 있게 됩니다. 만일 효도의 관계가 강제된다면 두 관계는 산부처로 드러날 수 없게 됩니다.


이 관계에서 유일한 불공의 방식은 노부부의 경우는 며느리의 욕망을 긍정하면서 부단히 반응하는 것이라면, 며느리의 경우는 시부모의 욕망을 인정하면서 그에 대해 부단히 응대하는 것입니다. 불공은 즉 완전한 일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분리도 아닌 것입니다.


만일 완전한 일치를 추구한다면 산부처라는 타자성은 무화될 것입니다. 노부부의 욕망에 일치시키면 며느리의 욕망은 좌절될 것이고, 반대로 며느리의 욕망에 따르면 노부부의 욕망은 삭혀질 것입니다. 이처럼 각자의 욕망을 억압하는 구조라든지 또는 며느리와 같은 공동체의 역할에 종속시킨다면 이는 화목한 관계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노부부와 며느리가 완전히 분리되어 서로 반응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된다면 이도 불공은 아닌 것입니다.


처처불상은 자신의 욕망과 권리를 추구하는 산부처이니, 사사불공은 이 산부처들이 서로의 욕망을 인정하면서 반응하는 예술입니다. 미래의 사사불공은 이러한 욕망과 권리를 기반으로 하는 산부처를 전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노부부와 며느리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선생과 학생, 상사와 직원, 주임교무와 부교무등으로 변주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