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산책 | 가난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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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산책 | 가난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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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3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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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무의 '유림산책’(儒林散策) ⑨ | 박세웅 교무(북경대 철학박사)

박 교무의 유림산책(새연재-옛날대종경자리에).jpg

중국유학을 마치고 익산으로 이사한 후에 정토와 아기를 데리고 조실에 인사를 갔다. 종법사는 전무출신의 전무는 돈 전(錢), 없을 무(無)라고도 할 수 있으니, 가난을 행복으로 삼아 살아가길 당부하였다. 귀국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운데 낯선 지역에서 살아가려는 정토를 위해 건네시는 위로의 말씀이었다. 조실을 다녀온 그 날에 나는 정토에게 종법사의 말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가난했고, 그리고 또한 이미 가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자나 대종사 모두 그 초창기에는 참으로 간고한 생활을 하였다. 인과를 생각해보면 어찌 그런 생활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두 성인 모두 그러한 간고한 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어떤 '즐거움'이 계셨다.


어느 날 공자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낙(樂)은 또한 그 가운데 있다.”(「논어」, 옹야)고 말하며, 그의 수제자 안회에 대해서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시골에 있는 것을 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顔回)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다, 안회(顔回)여!”(「논어」, 옹야)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자나 안회의 말은 그들이 거친 밥을 먹거나 누추한 시골에 머무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다는 것이아니라, 그러한 가난에 그 마음이 얽매이지 않는 가운데 '그 어떤 즐거움'이 변치 않았다는 뜻이다. 이 후 중국 송대(宋代) 유학자들의 최대 화두는 바로 공자와 안회가 즐긴 이 즐거움(樂)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화두는 세상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제적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화두여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대종사는 성인들의 이 같은 안빈낙도(安貧樂道)에 대해 “가난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나 부족한 것을 이름이니, 얼굴이 부족하면 얼굴 가난이요, 학식이 부족하면 학식 가난이요, 재산이 부족하면 재산 가난인 바, 안분을 하라 함은 곧 어떠한 방면으로든지 나의 분수에 편안하라는 말이니,(중략) 공부인이 분수에 편안하면 낙도가 되는 것은 지금 받고 있는 모든 가난과 고통이 장래에 복락으로 변하여질 것을 아는 까닭이며, 한 걸음 나아가서 마음 작용이 항상 진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수양의 힘이 능히 고락을 초월하는 진경에 드는 것을 스스로 즐기는 연고라, 예로부터 성자 철인이 모두 이러한 이치에 통하며 이러한 심경을 실지에 활용하셨으므로 가난하신 가운데 다시없는 낙도 생활을 하신 것이니라.”고 말씀하였다.


그런데 대종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나는 세상의 모든 것과 그 모든 것을 싣고 있는 대지 강산까지도 다 내 것을 삼아 두고, 경우에 따라 그것을 이용하되 경위에만 어긋나지 않게 하면 아무도 금하고 말리지 못하나니, 이 얼마나 너른 살림인가.”라고 말하며 고락을 초월하는 진경에만 머물지 않고 그 자리에서 참으로 국한 없는 큰 본가 살림을 발견할 것을 당부한다. 여기서 말씀한 본가 살림이란 무엇일까? 만약 대종사에게 묻는다면 또 다시 '○'을 그리고 “이것이 곧 우주의 큰 본가이니, 이 집 주인이 되려거든 삼대력의 열쇠를 얻어야 하고 그 열쇠는 신 · 분 · 의 · 성(信忿疑誠)으로 조성한다.”고 말씀할 것이다.


우리가 부득이하게 초기 교단의 재산 가난에 처해 있을지라도, 우주의 본가 자리인 진리를 향한 즐거움마저 가난에 처해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본의가 아닐 것이다. 주산종사(1907-1946)는 대중들이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그 간고한 시절에도 대중을 선방으로 불러 독려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가난하지만 또한 이미 가난하지 않다.


“우리 한 끼 밥을 굶을지언정 좌선은 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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