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산책 | 그 길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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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산책 | 그 길 끝에서
  • 관리자
  • 승인 2018.02.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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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무의 '유림산책’(儒林散策) ⑩ | 박세웅 교무(북경대 철학박사)

박 교무의 유림산책(새연재-옛날대종경자리에).jpg

예비교무시절 학부 1학년 때 당시 종법사의 위(位)에 계시던 좌산상사를 모시고 학년훈증훈련을 나게 되었다. 간사 근무시절부터 대학교에 오기까지 종법사라는 분을 가까이에서 한 번도 뵌 적이 없었기 때문에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교단의 최고 스승이니 그 모습에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남들보다 가까이 다가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이 종법사의 일동일정을 자세히 살폈던 기억이 난다.


초기교단 당시에도 대종사의 모습에서 신비스러움을 찾으려고 했던 제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공자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들은 스승의 도가 너무 높아서 감히 따라갈 수 없다고 여기면서 공자가 무엇인가 중요한 비결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였다. 어느 날 공자는 그러한 제자들을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대들은 내가 무엇을 숨긴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대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노라. 실천하면서 그대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는 사람이 바로 나이다.”(「논어」, 술이)


눈이 쌓인 어느 겨울날 대종사 봉래정사라는 곳에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옛날 어느 학인(學人)이 그 스승에게 도를 물었더니 스승이 말하되 '너에게 가르쳐 주어도 도에는 어긋나고 가르쳐 주지 아니하여도 도에는 어긋나나니, 그 어찌하여야 좋을꼬?' 하였다 하니, 그대들은 그 뜻을 알겠는가?”라고 물었지만 답하는 제자가 없었다. 이후 대종사 친히 마당을 나가 눈을 쓸자 한 제자가 급히 나가 방으로 들어가기를 청하니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나의 지금 눈을 치는 것은 눈만 치기 위함이 아니라 그대들에게 현묘한 자리를 가르침이었노라.”


한편 불법의 진수가 담긴 「금강경」의 첫 장은 부처의 고준한 말씀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평범한 일상의 내용으로 시작된다. '부처는 식사시간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鉢盂)를 가지고 사위대성(舍衛大城)에 들어 걸식하기를 시작한다. 그 때 성 안에서 차례로 빌기를 마치고 본처(本處)로 돌아와 공양을 마치고 나서, 의발을 거두고 발 씻기를 마친 후 자리를 펴고 앉는다.' 이처럼 공자와 대종사 그리고 부처는 사사로이 전해줄 수 없는 그 자리를 입으로 말씀하기 전에 이미 몸을 통해서 가르침을 마쳤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몸이란 바로 공자가 말한 바와 같이 실천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성인들이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을 통해 보여주는 가르침을 배우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대종사의 말씀처럼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대산종사는 대종사 열반 후에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내가 그동안 대종사의 색신만 모시고 살았지 법신을 뵙지 못하고 살았음을 깨닫고 그 후부터는 법신을 모시기 위해 적공을 계속하였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대산종사가 적공을 통해 만난 대종사의 법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매한 나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지만 대산종사가 「정전대의」에서 원불교 훈련법중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에 대한 설명 마지막 부분에 써놓은 법문이 떠오른다.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 이 법은 대종사께서 평생을 통해서 하신 공부길이요 영생의 공부 표준이시며 누구나 스스로 성불하여 영겁에 불퇴전이 되도록 하신 법이다.”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만 빠짐없이 밟아간다면, 우리는 대종사가 평생을 통해 실천했던 그 모습 그대로를 닮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당장 그 분을 알아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분이 일생을 걸어갔던, 그 분이 영생을 통해 걸어가려는 그 길만이라도 우리 함께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 가보자.
우매한 나조차 성불시키고자 하신 그 분의 대자대비의 훈풍을 느끼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마주하리라.


“그 길 끝에서 그분의 법신을 마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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