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 오피니언 | 제주 4·3,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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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 오피니언 | 제주 4·3,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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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3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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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수 활동가(둥근햇빛발전협동조합)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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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아름다운 신혼여행지는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핀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이산하,「 한라산」)


생애 첫 여행이었던 제주를 잊지 못했다. 아름다운 자연도, 행복했던 기억도, 잠깐 방문했던 4.3평화공원의 적막함까지도. 올 해, 전국인권활동가대회 “인권으로 역사를 여행하다“로 다시 제주를 찾았다.


활동가대회의 첫 일정은 4.3 평화기념관 견학이었다. 전시관으로 통하는 기나긴 동굴을 지나 가장 처음 만나는 것은 백비,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이다. 비어 있는 백비처럼, '4.3' 역시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하였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4.3에 붙인 혹은 붙이지 않은 이름이 우리와 4.3의 관계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4.3은 알지 못했다. 수업시간에도 들어보지 못했다. 4.3은 배우지 않아도 무관한 역사였고, '조병옥'의 묘지 근처에 사는 나는 그를 '독립운동가'로 배우며 자랐다. 나에게 4.3은 '실재하지 않는 기록'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동굴로 숨어야 했던 시간. 살아가기 위해 고향도 가족도 외면해야 했던 시간. 그렇게 버려야 했던 삶과 기억을 되찾기 위해 소리친 시간, 70년, 누군가에게 4.3은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이다.


2000년 제정된 4.3 특별법으로(부족하나마) 진상조사가 이루어졌다. 15년 전의 첫 사과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고 했다. 십여 년이 지나, “제주도민의 아픔을 모두 해소”하기 위해 4월 3일은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다. 15년 전에야 잡아낸 해결의 가닥은 지금 시대의 상처를 봉합하는 매듭이 되었는가?


활동가대회가 열리기 전, “공산 폭동“을 ”민중항쟁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진실과 일치“하는지 반문하는 '4.3 진실연대'의 포럼이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일들은 대부분 '다시 써진 이름'의 역사이다.

한 때 폭동과 반란의 이름으로 기록된 시민들의 역사는 오랜 세월 이어진 사람들의 기억과 함께 쌓아 올린 민주주의를 통해 혁명과 민주화운동으로 다시 이름 지어졌다.


2018년, 제주 4.3 70주년이며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의 해. “4.3사건의 소중한 교훈을 더욱 승화 시킴으로써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약속이 이제는 지켜져야 할 때이다. 4.3은 정당한 이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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