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천심이다 하늘 아래 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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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이 천심이다 하늘 아래 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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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0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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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 4 | 천지은 교도(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9면-토착기행.JPG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고 해도 홀로 존재하는 사상은 없다.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출발하였고, 이슬람은 기독교에서 영향을 받았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레닌과 모택동은 마르크스에게 사상의 빚을 졌다. 사상은 서로 스미고 겹치고 이어져서 어느 순간 우뚝 솟구쳐 올랐다.


그것이 100년 전의 러시아 혁명이고 그 이전의 동학농민혁명이 아니던가. 후천개벽 사상은 불타던 백제로부터, 그리고 아직도 오지 않고 있는 미륵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남 화순에 있는 운주사에는 온갖 종류의 '아직 오지 않은 부처들'이 풍화되고 있다. 오랜 비바람에 씻겨 부서지고 뭉개지는 부처 앞에서 다소곳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경건하다. 천불산 계곡에 자리한 운주사는 도선 국사가 미륵불의 도래를 이루기 위해 천불천탑을 세운 뒤 창건했다고 전해오는 절인 데, 또 운주사는 황석영(黃晳暎ㆍ1943~)의 소설「장길산」에서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소설은 천민 장길산을 비롯한 민중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세상 끝으로 밀려난 힘없는 백성들이 미륵의 시대를 꿈꾸며 역시 천불천탑을 세우고 만든 절이다. 「장길산」의 대단원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미륵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있어야지. 몸집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잘 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어찌 알고 미륵님을 감히 새긴단 말인고”, “여보게, 미륵님을 못 보았다고? 이런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미륵님이란 자네 아닌가. 자네 모양과 똑같은 이가 미륵님일세.”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상의 '그 무엇'에 희망을 걸고 목숨을 바쳐야 했던가?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한계로 부터의 구원과 삶을 폐허로 몰고 가는 온갖 억압과 죽임의 제도로부터 해방을 꿈꾸며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의 염원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 무엇이 종교이든 혁명이든 중요치 않았다. 어제의 삶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선천이란 지리멸렬하고 지긋지긋하게 빼앗기고 가혹하게 빼앗고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죽였던 어제의 삶이고, 후천이란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싸우지 않고 굶주리지 않으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삶이다. 후천개벽이 뭐 별것이겠는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 개벽의 삶 아니겠는가. 혼자만의 행복이 아닌 여럿의 행복, 사람만의 행복이 아닌 만물의 조화와 균형에서 오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후천개벽 아닌가 싶었다.

# 사진 : 화순 운주사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화순 운주사는 미륵 세상,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매우 강렬한 곳이다. 이 절은 승려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942년에만 하더라도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 있다. 10m 이상의 거구의 부처에서 부터 작은 부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 매우 투박한 솜씨로 제작되어 있어 오히려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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