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소태산 대종사는 현재 인류가 처한 상태를 '마치 어린아이가 칼을 들고 있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정신 수준은 어린아이인데 칼이라는 무서운 무기를 들고 있으니 칼을 유용한 데에 쓰지 못하고 스스로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한 말일 게다.
이런 걱정은 맞아 떨어져 결국 지난 20세기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치렀다. 종교적 학살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사회에도 최근 몇 년간 세월호 등 그야말로 거대한 태풍에 비유될만한 일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태는 곳곳에서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문제점들을 던져주었고 그 파장이 모든 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어떤 철학자들도 20세기 인류의 정신의 몰락을 구제하지 못했다. 필요한 것은 개벽이었다.
개벽 사상은 조선후기의 혼란기에 비로소 싹을 내밀게 된 한국 토착사상의 핵심이다. 이 사상에 따르면 지금 세상은 일대 격변적인 후천개벽시대에 도래했다고 한다.
후천개벽에 대해 해월 최시형은 “후천을 중심으로 하되 선천의 수승한 가치를 개벽 기준에서 해체, 재구성해 탁월하게 배합하는 것이 참다운 후천개벽이라”고 했다. 때문에 증산 강일순은 후천개벽이 '원시반본(原始反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뜻은 처음으로 돌아가 우주적 본성을 찾으라는 것이다. 우주적 본성이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지는 첫 자리를 의미한다.
물질개벽과 아울러 정신개벽을 주창한 소태산은 모든 존재가 은(恩)으로 맺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의 은 사상은 권장사항이나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서 전인격적 삶의 의무를 가리킨다.
김형수의 책 「소태산 평전」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 표어가 출현하는 맥락을 은(恩)의 입장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은은 베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은 속에 있음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도덕'을 '진리'로 바꾼 것이다. 뭔가를 믿어야 하는 타력신앙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세상은 왜 '은'속에서 반목 충돌했는가? 선천시대의 자기분열 탓이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고, 나는 남과 다르니, 분리하고 차별하고 억압하고 제거하는 세계를 소태산은 선천이라 하였다. 무서운 것은 과학이 아니라 도덕이다. 도덕의 타락이 인류를 위기에 빠뜨리는 주범이다.”
소태산이 말하는 후천개벽 사상은 근본주의적 주장을 반복하는 사상이 아니라 도덕문명(세계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후천개벽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사진설명 : 아름다운 공존, 빈배 주변에는 갈매기가 모이지 않는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아 육지로 돌아오기 시작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배 주변으로 갈매기들이 몰려들어 먹이를 얻어먹는다. 새벽 바다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삶의 공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