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여라 (持受用, 또는 놓아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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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여라 (持受用, 또는 놓아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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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6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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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처음 만나는 명상(33) ㅣ 박대성 교무(본지 편집장, 길용선원 지도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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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번 일어나는 어떠한 현상이나 사실을 감정적으로 밀어내거나 또는 화를 낸 후에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드러난 사실을 부정하거나 저항하는데 많은 정력을 소모합니다. 그런 경우 심신은 더욱 긴장하게 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야할 에너지가 엉뚱하게 소비되어 버립니다.


신경, 근육, 뼈마디까지 다 풀어 늦추고 외계의 소리, 경계, 시비 등에 동하지 않고 다 받아들여 평온과 안정을 얻는 것이 선이요 진활선(眞活禪)입니다.(대산종법사 법문집 3집, 제3편 수행, 20)


사실 받아들인다는 말은 자신의 원칙을 훼손 하거나 무조건적인 수용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굳어진 습관으로 긴장되고 오염된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후에야 만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자세가 몸에 힘을 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받아들인다는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이 계십니다. 대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이중적인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받아들임'의 경우에는 뒤집어서 '놓아버림'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셔도 그리 틀리지는 않습니다. 받아들임의 초점이 외부에 향해 있다면 놓아버림의 초점은 내부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같은 것의 다른 표현이겠죠. 어떠한 현상이나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놓아버린다고 이해하면 좀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선방에서 잘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분홍색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이 질문을 받은 선객은 순간 당황하다가 웃음을 터뜨립니다.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음에도 저 질문을 받자마자 머릿속에는 '분홍색 코끼리'가 떠오릅니다. 심지어 분홍색 코끼리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떠오릅니다. 생각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더욱 그 생각을 강하게 합니다. 이럴 땐 의지를 내려놓고 떠오르는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의 조절을 쉽게 만듭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회피와 통제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상에 있어 현명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우리가 회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통제한다고 조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떠올리지 말라고 해도 자꾸 떠오르는 분홍색 코끼리처럼 말입니다.


받아들임을 놓아버림과 같은 개념으로 설명할 때 종종 거론하는 예가 바로 2014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끌었던 '겨울왕국'의 주제곡인 '렛잇고(Let it go)'입니다. 가사 중에 “마음을 열지 마라, 들키지 마라. 항상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숨겨야 해, 느끼면 안 돼, 남이 알게 해선 안 돼. 근데 이젠 다들 아는 걸. 놔 버려, 저 멀리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어 놔 버려(Let it go), 놔 버려. 문을 쾅 닫고 떠났으니 뒤돌아 보지마. 뭐라 하든 상관없어”라고 노래 합니다.

이 노래는 마음을 설명하는 좋은 가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려고 하기 보다는 감추고 외면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부정적인 것은 숨기려고 합니다. 아프리카 원주민이 과일이 숨겨진 주둥이 좁은 항아리로 원숭이를 잡는 일화가 있습니다. 원숭이는 항아리 속에 과일을 꽉 잡고 놓지 못해 결국 잡히고 맙니다. 그냥 놓아버리면 되는데 말입니다.


놓아버림은 이처럼 마음의 무게를 툭 내려놓는 것 입니다. 놓아버리면 가볍고 홀가분해집니다. 심하게 다투며 화를 내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으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긴장이 풀리는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이처럼 받아들임과 놓아버림은 자각만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 가장 쉽고도 놀라운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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