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개벽으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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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벽으로의 여행
  • 관리자
  • 승인 2018.05.2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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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 9 | 천지은 교도(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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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사는 때가 많았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몽골여행에서 새삼 깨달은 바가 있다. 고비사막에 오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것이다. 또 하염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다가, 하늘에서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문득 '우리가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이 우주에서 티끌에 불과한 존재라는걸 깨닫기까지 채 며칠이 안 걸렸다. 여행을 통해 세상에 겸허해지게 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렇게 작은 점으로 있는 나를 느끼고 존재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 것은 짧은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성자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개인의 안위에 머물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각처로 떠돌아다니며 진리를 깨우치는 데 평생토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그들 가운데 수운 최제우(1824-1864)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최제우는 경상북도 경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일찍부터 경사(經史)를 익혔으나 극심한 가난이 유년기를 사로잡았다. 13세의 나이로 울산의 박 씨와 혼인하였고, 17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삼년상을 마친 20세에는 집안 살림을 돌보기 위하여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갖가지 장사를 하거나 환자를 치료하였고 점을 보기도 하였다. 가끔 서당에서 훈장 노릇을 하였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의 명을 일러 성이라고 한다. 『중용』1장에 나오는 말이다. 최제우는 세상이 이토록 어지럽고 각박해지는 이유가 천명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천명에 대해 공부 하기로 하였다.


천명을 공부하기 위하여 그는 맨 먼저 서책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서책을 놓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만나는 공부를 시작하였다. 1856년 여름 경남 양산의 천성산에 들어가 하늘과 땅을 전면적으로 만나면서 시작된 그의 구도는 1857년 천성산 내원암 부근의 적멸굴에서 나와 울산에서 공덕을 계속 닦았고, 1859년 10월 처자와 함께 경주 구미산 용담(龍潭)으로 돌아와 수련을 계속하였다.

최제우의 가난은 거의 절망적인 상태였다. 가난은 최제우 뿐만 아니라 세상의 문제였다. 조선은 부패와 탐학으로 몰락 직전이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집단은 더욱 욕망을 크게 키워 나갈 뿐 공동체의 삶을 돌보지 않았다. 이러한 때 그는 한울이 명한 것을 알아내야 세상을 고칠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이름을 '제우(濟愚)'로 고치고 더욱 정진하였다.


# 사진 설명 : 성화문(聖化門)은 경북 경주시 현곡면 용담정길 135에 있는 용담정으로 오르는 길에 있다. 성화문은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성화(聖化)는 '성인이 되다'라는 뜻이다. 이곳은 도학으로 이름이 높았던 수운의 아버지 최옥이 나이 60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구미산 계곡에서 시를 읊조리며 살던 곳이다.


최옥은 나이 63세 되던 해 한 씨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아 1824년 10월 28일 수운을 낳았다. 태어나던 날 구미산이 사흘 동안 진동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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