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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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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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04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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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무의‘유림산책’儒林散策 ⑰ | 박세웅(성호)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

박 교무의 유림산책.jpg

예전에 '소원을 말해봐?'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 노래가 유행하다 보니 당시에 대중매체나 거리에서 쉽게 그 노래를 접할 수 있었다. 노래의 후렴구에는 '소원을 말해봐?'라는 말이 반복되는데, 그 때마다 혼자 속으로 '통일'이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누가 보면 늘 통일을 염원했던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나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의 발로였다.


어릴 적 누구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에게는 통일이라는 간절한 염원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4월 27일 남북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경계선을 넘나들며 보여준 통일의 봄소식에, 우리 모두가 가슴 뭉클했던 이유이지 않을까!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춘추(春秋)시대 주(周)의 제후국인 노(魯)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당시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지배이념 아래 분열과 대립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그는 세상이 혼란한 이유를 인(仁)의 부재와 예악(禮樂)의 상실에서 찾고, 주나라 초기와 같은 평화의 성세(聖世)를 회복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이후 13년 동안 중국천하를 주유하며 뜻이 맞는 군주를 찾았지만 이 역시 좌절되었다. 말년에 노나라로 귀국하여 제자 양성과 고문헌 정리에 진력하다 세상을 떠나게 된다. 혹자는 공자의 일생을 보고,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허망함과 안타까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자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결국 통일과 화합의 세계를 만들고자했던 그의 간절한 마음자취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공자는 분열과 대립의 시기에 “군자는 화(和)하나 동(同)하지 않으며, 소인은 동(同)하나 화(和)하지 않는다.”(『논어』「자로」: 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라고 말한다. 여기서 화와 동은 대립 개념으로서, 화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평화와 공존의 논리라면,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지배와 흡수의 논리를 말한다.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공자가 말씀한 화동담론(和同談論)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과 북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체제로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흡수합병이든 적화통일이든 기본적으로 동(同)의 논리에 따른 통일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남과 북이동(同)의 논리가 아닌 화(和)의 논리로 통일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과 평화로써 통일과정을 이끌어 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통일을 염원해온 좌산상사는 이를 '합의통일'이라고 말씀한다.


우리나라가 분단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 내외적인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 했지만, 대종사는 남북 분단의 원초적 씨앗을 원한으로 보았다. 그는 선후천의 시대를 말하며“앞으로 선천 원한의 기운이 몰려다니다가 터져서 장난을 치는 곳에는 고금에 보지 못하던 무서운 난리나 병을 낼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난리의 근본은 원망생활에서 시작되고, 평화의 근본은 감사생활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처럼 소인의 동이불화(同而不和)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동(同)의 논리에 따라 통일을 하려고 한다면 또 다른 분단의 씨앗인 원망과 원한을 만드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서로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평화와 공존의 화(和)의 논리에 따라가다 보면, 정산종사의 말씀대로 세계평화는 무위이화(無爲而化)로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손잡게 될 것이리라.


“앞으로 우리 이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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