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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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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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04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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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 10 | 천지은 교도(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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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4월 5일 수운 최제우는 한울님께 정성을 들이던 중 몸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하여졌고 하늘과 땅이 크게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공중에서 들려왔다. 이러한 체험을 통하여 수운은 동학(東學)을 창시하였다. 당시 수운이 겪은 불우한 처지는 결코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창생의 고난이었고 좌절이었던 만큼, 수운의 득도는 시대적 요청이었다.


1861년 수운이 포교를 시작하자 많은 사람이 동학에 입교하고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다. 동학이 점점 세력이 커지자 경주 지방의 유림에서 동학은 곧 서학이며 천주교를 신봉한다고 모함하였다. 조정에서 서학을 강력하게 탄압하자 수운은1861년 11월 호남으로 피신하였다.


남원의 은적암(隱寂庵)에서 다섯 달 동안 머물면서 동학론인「논학문(論學文)」을 집필하였다. 1862년 5월 경주에 돌아와 포교에 전념하여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1862년 9월 혹세무민의 죄로 경주진영(慶州鎭營)에 체포되었으나 수백명의 제자가 몰려가 석방을 청원하니, 무죄 방면되었다.


동학도가 점점 늘어나게 되자, 그해 12월 각지에 접(接)을 두고 접주(接主)가 관내의 교도를 다스리는 접주제를 만들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뿐만 아니라 충청도와 경기도에까지 교세가 확대되어 1863년에 교인은 3,000여 명, 접소는 13개에 이르렀다.


그해 7월 최시형(崔時亨)에게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렸고, 8월에 도통을 전수하여 제2대 교주로 삼았다. 그리고 수운은 11월 20일 경주에서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 철종이 죽자 1864년 1월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이곳에서 심문받다가 3월 10일 41세의 나이로 참형되었다.


수운은 천명(天命)을 '한울님'으로 파악하였다. 그의 한울은 곧 사람이었다. 하느님은 초월적 존재이지만 부모님처럼 섬길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이며, 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운의 한울님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 밖에 존재하는 하느님이다.


시인 신동엽은 시 <금강> 제 2장에서 수운 최제우의 깨달음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짚신 신고 / 수운은, 삼천리 / 걸었다. // 1824년 / 경상도 땅에서 나 / 열여섯 때 부
모 여의고 / 떠난 고향. // 수도(修道) 길. / 터지는 입술 / 갈라지는 발바닥 / 해어진 무릎. // 이십년을 걸으면서, / 수운은 보았다. / 팔도강산 뒹군 굶주림 / 학대, / 질병, / 양반에게 소처럼 끌려다니는 농노. / 학정 / 뼈만 앙상한 이왕가(李王家)의 석양. // 이천년 전 / 불비 쏟아지는 이스라엘 땅에선 / 선지자 하나이 나타나 / 여문 과일 한가운델 / 왜 못박히었을까. // 삼천년 전 / 히말라야 기슭 / 보리수나무 투
명한 잎사귀 그늘 아래에선 / 너무 일찍 핀 / 인류화(人類花) 한 송이가 / 서러워하고 있었다. // 1860년 4월 5일 / 기름 흐르는 신록의 감나무 그늘 아래서 / 수운은, / 하늘을 봤다. / 바위 찍은 감격, 영원의 / 빛나는 하늘.”


* 사진 설명 : 용담정 - 구미산 용담정은 1860년 4월 5일, 최제우가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라는 한울님의 계시를 받아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는 결정적인 체험을 한 곳이다.


수운은 이후 시천주(侍天主) 사람을 한울같이 존엄하게 섬기고,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진리를 널리 알리며 본격적으로 동학을 포교하기 시작했다. 용담정 내부에는 수운 최제우의 존영이 모셔져 있으며 기도와 공부하기 좋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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