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성과 주착심’의 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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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성과 주착심’의 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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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2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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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119)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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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정전』 「정신수양의 요지」에서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라고 정의하십니다. 결국 정신은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마음의 경지입니다.


이에 대해 정산종사는“정신이란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인데, 분별성이란 예쁘고 밉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들이 잠시잠시 일어나는 것이요, 주착심은 그 분별성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때가 정신이다.”부연하십니다.


분별성은 분별하는 성질이라면 주착심은 그러한 성질이 고착화된 습성으로 편견이나 선입견, 고정관념 강박관념 같은것입니다. 또는 징크스 타부 같은 미신도 분별성과 주착심입니다.


이러한 정신의 위상에 대해 정산종사는 성품과 마음과 뜻의 관계를 통해 자리매김합니다. “성품은 본연의 체요, 성품에서 정신이 나타나나니, 정신은 성품과 대동하나 영령한 감이 있는 것이며, 정신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가 마음이요, 마음에서 뜻이 나타나나니, 뜻은 곧 마음이 동하여 가는 곳이니라.”(정산종사법어 원리편 12장)


결국 정신은 성품과 마음을 통괄하는 중심으로 영령한 감이 있는 자리입니다. 성품은 한계도 없고 걸림이 없는 자리라면 마음은 한계가 있고 상대적인 자리입니다. 성품은 상대가 끊어진 절대의 자리라면 마음은 상대가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은 한계가 없는 자리이면서 그 자리를 한계가 있는 자리에서 작용하는 분계점입니다. 정신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가 마음이라면 마음이 동하여 가는곳은 뜻입니다. 정신이 마음으로 전환되어 분별하고 마음이 뜻으로 전환되어 작용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은 유동적인 흐름입니다. 유동적인 마음이 잘 흘러가면 뜻이 되나 정체되면 분별성과 주착심이 됩니다. 물이 흘러 필요한 곳에 대어지는 것과 정체되어 썩는 차이입니다. 마음이 유동성을 가지면 뜻으로 이어지나 정체되면 분별성과 주착심이 됩니다.


또는 마음은 활동이므로 살아있는 작용이요 역동입니다. 이러한 활동성인 마음이 굳어지면 분별성과 주착심이 됩니다. 유동적인 물이 얼어붙어 얼음이 되는 격입니다. 유동적인 물 상태에서는 어떠한 그릇에도 담길 수 있으나 얼음으로 굳어지면 다양한 그릇에 담길 수 없게 됩니다. 마치 마음이 얼음처럼 고착되면 대상화되고 실체화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본래 역동적인 마음이 굳어져 실체화 되면 마음은 분별성이 되고 주착심이 되는 것입니다. 분별하는 패턴이 고착되면 마음의 원래 작용인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작용이 굳어지게 됩니다. 물처럼 유연한 양태가 얼음처럼 고착된 자아식이 됩니다. 이것을 분별성과 주착심이라 합니다.


분별성과 주착심은 접착제처럼 경계에 딱 붙어서 굳어 버린 마음으로, 그 당면 상황에만 집착되어 시야가 한없이 좁아져서 좀처럼 다른 상황을 살펴볼 여지를 막아버립니다. 우리는 시공간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공간에 묶여버리면 새로운 시공간을 창출한 시야가 막혀 버립니다. 미래의 시공간을 창조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보신주의나 수구주의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 고민에만 빠져있거나 눈앞의 일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어디선가 들리는 노래를 즐길 여유가 없으며, 자기문제에만 매몰된 사람은 '내 이야기를 좀 들어 달라'는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얼음처럼 굳어 있으면 나와 다른 이야기나 새로운 발상에 대해 살펴볼 여유도 없게 됩니다. 욕심이나 집착을 내려놓고 상황을 살펴볼 마음의 여유와 통찰의 거리를 확보 할 수 없게 됩니다. 분별성과 주착심이 있으면 성찰의 거리가 없게 되며,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정신을 차리면 성찰의 거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성품은 무엇이라 규정되기 이전이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씨알같은 자리라면, 마음은 물처럼 자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도 또는 얼음처럼 자의식으로 굳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정신은 고착되지 않는 성품에 바탕하여 마음이 역동적으로 살아 꿈틀 거리도록 하여 뜻을 세우는 중심입니다. 결국 정신은 성품과 마음의 분계점에서 뜻으로 흘러가도록 깨어있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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