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수양과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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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수양과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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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06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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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튼교무의 정전산책 (121) ㅣ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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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정신수양의 목적」은 “그런 고로 천지만엽으로 벌여가는 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自主力)을 양성하기 위하여 수양을 하자는 것이니라.” 결론짓고 있습니다.


정신수양은 욕심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자는 것이며 그리하여 자주력을 양성하는 것이 수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대종경』 수행품 36장에서 소태산 대종사에게 한 제자가 “무슨방법으로 수양하여야 오욕을 다 없애고 수도에 전일하여 부처님과 같이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을 하오리까.”라고 여쭈니 “욕심은 없앨 것이 아니라 도리어 키울 것이니, 작은 욕심을 큰 서원으로 돌려 키워서 마음이 거기에 전일하면 작은 욕심들은 자연 잠잘 것이요, 그러하면 저절로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욕심은 없앨 것이 아니라 서원으로 키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욕심이란 무엇이냐는 것이며, 욕심은 제거의 대상인지 아니면 확장의 대상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욕심은 욕구 또는 요구 그리고 욕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프랑스 현대철학자 라깡의 설명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라깡에 따르면 '욕구'는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충동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바라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내 안에 있는 대자적(對自的) 충동입니다. 이러한 욕구가 타인에게 요청될 때가 '요구'입니다. 배가 고픈 욕구가 있을 때 엄마에게 '밥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요구는 내 안의 욕구를 타인에게 던지는 대타적(對他的) 바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욕구와 요구가 만나는 교차로에 있습니다. 너와 내가 만나는 통로입니다. 이러한 통로에서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욕구불만이 생기며, 반대로 교환이 잘 이루어지면 욕구충족이 되겠지요. 배고픈 욕구에 따라 엄마에게 밥 차려달라는 요구가 실현되면 욕구충족이 되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면으로 변주됩니다. 만일 욕구에 따른 요구가 해소되지 않아 욕구불만이 쌓이면 개개인은 고통스러워합니다.


『정전』「정신수양의 목적」중에서 “자기에게 있는 권리와 기능과 무력을 다하여 욕심만 채우려 하다가 결국은 가패 신망도 하며, 번민 망상과 분심 초려로 자포자기의 염세증도 나며, 혹은 신경 쇠약자도 되며, 혹은 실진자도 되며, 혹은 극도에 들어가 자살하는 사람까지도 있게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라는 바를 충족하고자 하는 욕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라깡은 욕구-요구의 관계를 넘어욕망을직시하라고합니다. '욕망'은 분열된 주체에 의해 발생하는 만족을 모르는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은 한편으로는 세속적 범죄로 나아갈 수도 있으나 다른 한 편으론 생산적 욕망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욕망은 참아야만 되고 견디어야만 되는 금욕적인 윤리적 잣대로만 표기될 수 없는 에너지로, 거세되어야 하고 금기시되기 보다는 생산적으로 긍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욕구는 삶의 충동이라면 요구는 삶의 충동을 위한 필요이고, 욕망은 욕구와 요구의 관계로만으론 충족될 수 없는 빈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욕구충족의 작은 욕심에 안주하거나 또는 필요 이상의 지나친 탐욕으로 나아가거나, 반대로 욕구충족을 넘어서서 욕망이라는 빈틈의 큰 욕심으로 향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분별성과 주착심이 떨어진 자리에는 욕구도 요구도 없습니다. 이러한 욕구도 요구도 없는 절대 자리를 시공간이 펼쳐진 현실계에 적용하면 간격이 발생합니다. 이 간격을 승화시키는 방법은 욕구-요구가 없는 절대계에 바탕하여 욕구불만과 만족 사이를 무한 반복하는 현실을 생산적인 욕망의 차원으로 까지 욕심을 키우는 것입니다. 욕구와 요구의 교차로에서 욕구충족이나 욕구불만의 차원을 넘어서서 원력의 욕망으로 차원이동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사용법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정신을 양성해야 합니다. 정신은 절대계와 현상계를 통괄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신수양은 물욕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질의 세력에 끌려가는 것이 문제이지 물질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정신의 세력이 물질에 끌려가는 물욕이 문제일 뿐입니다. 정신수양도 정신개벽의 한 방법입니다. 정신수양은 단순한 욕구-요구의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 욕망의 관계로까지 확장하는 수행입니다. 공심(公心)과 연동되어 있는 원력으로까지 확장된 수행으로, 정신수양이 될수록 자리이타의 공익성이 더욱 확대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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