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칼럼 | 슬픈 노랑, 돌아봄의 한 끗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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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안칼럼 | 슬픈 노랑, 돌아봄의 한 끗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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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0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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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경 교도(서울교당, (주)인포디렉터스 콘텐츠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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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

뙤약볕이란 단어를 올해처럼 실감 나게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아스팔트에 닿는 신발 밑창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뜨거운 공기를 눌러 밟으며 전철역을 향해 빠르게 걷던 발걸음이 멈칫, 한다. 어떤 물체 때문이었다. 그것은 골목길에 주차된 노랑 9인승 차량. '000어린이집', '어린이가 탑승해있어요' '통학 차량'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심장이 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끼며 이미 나의 시선과 몸은 노랑을 향하고 있었다. 웬만한 중형 차량보다도 더 짙게 빛가림(선팅)이 되어 유리에 이마가 닿을 정도인데도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양손으로 그늘 막까지 만들어 타인의 차량 내부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촘촘히 들여다보는 상황이라니. 까치발을 들어 차량 바닥까지 검열하듯 보고 돌아서는데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땀과 눈물이 몰려든다. 이 여름, 지독하게 슬픈 노랑이다. 내가 이럴진대 유가족들은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노랑은 삼원색 중 가장 밝은 기본색으로 눈에 잘 띄기에 신호등이나 차선 같은 교통표지 및 통학 차량 등 어린이의 안전과 관련된 경우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색이다. 노랑은 심리적으로 안전색채(安全色彩)로서 조심, 주의 표식에 사용하고 노랑과 검정의 배색은 명시성과 가독성이 가장 높아 어린이 시설 주변, 어린이용품, 통학 차량, 교통안전 사인물에 가장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그런 상징으로 노랑을 칠한 통학 차량에서 어른들의 부주의로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7시간 동안 방치된 어린이가 사망했다. 작년 광주 어린이집 차량 방치사건의 피해 아동은 아직도 의식이 없는 가운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삶은 잊을만하면 늘 우리의 경험과 인식을 가볍게 넘어서곤 한다. 인식과 행동의 빈틈과 모순을 비웃으며 털어내기 어려운 노랑 트라우마를 선사했다.


해당 차량 기사의 '단 한 번도 뒤돌아 본 적이 없다'라는 말은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어린이집 통원차량에 방치된 어린이가 숨지는 사고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 차량 2만 8천 3백 대에 '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차량 가장 뒷자리까지 가서 확인하고 센서에 휴대전화를 대면 어린이집 교사와 원장의 휴대전화에 '정상 종료' 메시지가 전송되는 방식, 어린이의 가방에 작은 단말기를 달아서 부모에게 문자를 송신하는 방식 등 보건복지부는 기술적인 검토를 마친 뒤 한 가지 방식을 채택 하거나,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권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량을 확인하지 않은 기사와 원생을 챙기지 못한 차량 인솔교사와 담임교사 등의 부주의 총합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다. 그러나 사고 이후 지나는 어린이 통학 차량을 보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차량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했다. 폭염 속에서 아이가 7시간이나 울부짖을 때 만약 밖에서 차량 내부가 보였더라면.


'부질없는 만약'이 아니라 '앞으로의 만약'을 위해 적어도 어린이집 통학차량의 빛가림은 엄격하게 법적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제2의 제3의 피해 아동이 생겨선 안 된다. 남의 아이로 타자화, 단순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아이라는 관점으로 이 사안을 아프지만 정교하게 바라봐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우리 각자의 돌아봄과 간섭이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한 끗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도 지나는 노랑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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