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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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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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3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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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유행가」 ㅣ 조휴정(수현, 강남교당) KBS1 라디오“‘박종훈의 경제쇼’연출

장현의 '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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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찾아온 서늘한 밤바람에 혹시, 가을인가?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갑니다. 재촉하지 않아도 와줄 가을이건만 올 여름에 너무 지쳐서일까요? 가을이 기다려집니다. 저는 정말 유난히 진심으로 가을이 좋습니다. 쨍하고 오감을 자극하는 맑은 하늘과 공기도 좋고, 괜히 쓸쓸해지는 감정도 좋고, 거리에 굴러다니는 낙엽까지 좋습니다. 노래도 가을노래가,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가 특히 좋습니다. 그 중 한곡이 장현의 '미련(1972년, 신중현 작사 작곡)'입니다.


저는 가수 장현 씨를 생전에 두 번 만났습니다. 첫 번째는 2001년 9월, 911테러가 나기 딱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황인용 금보라입니다' LA특집방송 때 출연자로 만난 장현은 고국에 가서 다시 노래하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럴겁니다. 방송, 영화, 음악, 이쪽 일은 절대 끊지 못하는 중독입니다. 평생 도망가지 못하죠.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명예가 아무리 높아져도 무대를 떠나면 가슴이 뻥 뚫린 채 사는 겁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가 게스트로 출연한 그를 봤습니다. 장현의 라이브는 그때 처음 본 겁니다.

그런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와, 노래를 정말 잘하는 겁니다. 어릴 적 TV에서 몇 번 봤을 때는 그렇게 매력적인 가수는 아니었는데 60대 로맨스그레이 장현은 그 날 콘서트의 주인공보다 더 열렬한 박수를 받을 만큼 열창을 했습니다. 사실, 천재 신중현의 노래는 젊은 장현에게 버거웠을 겁니다. 그건, 노래를 기계적으로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저는 그날, 보석같은 신인을 처음 본 것처럼 새삼 장현에게 감탄했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음해였던가, 2008년 11월30일, 갑작스럽게 그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63세, 정말 안타까운 나이죠. 이제야말로 인생을 알고 노래도 아는 황금기가 찾아왔는데 자신의 음악같이 쓸쓸한 늦가을에 떠나버렸습니다. 1972년에 데뷔한 장현은 그 유명한'신중현 사단'의 대표가수로 '기다려주오', '마른잎', '잊어야한다면', '고독한마음', '미련'등히트곡을 남겼는데요, 저는 그 중에도 특히 '미련'을 좋아합니다.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끝이 없이 생각할 때에, 보고 싶어 가고 싶어서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미련 없이 잊으려 해도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가을하늘 드높은 곳에 내 사연을 전해 볼까나. 기약한날 우린 없는데 지나간 날 그리워하네. 먼 훗날에 돌아온다면 변함없이 다정하리라”


이제 이 노래도 50대 이상이 되어야 기억하겠죠? 이렇게 좋은 노래가, 이렇게 훌륭한 가수가 스르르 사라져버리는 것이 너무 속상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영화는 요즘 영화도 좋은데 노래는 옛날 노래가 더 좋아집니다. 지금 들어도 어쩌면 그렇게 세련되고 깊이가 있는지요. 그렇게 좋은 노래에 추억이 얹혀 가사 한 줄, 멜로디 한 소절에 10년, 20년이 그대로 소급되어 쿵, 하고 심장까지 와 닿습니다. 그 노래를 함께 들었던 사람, 그 노래가 흘러나오던 거리의 장면들이 어제 일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복기해봅니다, 지난 시간을, 부질없죠. 초라하고 부끄럽죠. 하지만 그마저도 가을엔 모두 '그리움'입니다.


미숙했던 나, 욕심 많았던 나, 치기 어렸던 너, 치사했던 너를 용서하고 이해하다보면 그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걸, 그 끝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가을은 우리에게 조용히 알려주기에 남루한 과거까지도 안아줄 너그러움이 생기나봅니다. 이번 가을에도 용서받고 용서하며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게 되겠죠. 벌써부터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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