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와 마음챙김(mindfulness)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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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와 마음챙김(mindfulness)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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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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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처음 만나는 명상(39) ㅣ 박대성 교무(본지 편집장, 길용선원 지도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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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마음 대중과 챙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미묘하여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진다 하였나니, '챙기지(필자 강조)'아니하고 어찌 그 마음을 닦을 수 있으리요.(대종경 수행품 1장)”


'대중'과'챙김'은 일견 비슷한 듯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을 '대중 잡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는 분별, 주착과 일체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는(不動) 가운데 마음을 수행 대상에 일치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챙김'은 언제 어디고 수시로 일어나는 마음과 대상의 일치 상태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사격선수가 자신의 총구를 과녁에 겨누는 것은 대중이라고 한다면 과녁에 명중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호흡을 고르는 것을 챙김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 일심(一心) 일념(一念)과 집주(集注)
원불교 수행에 있어 마음을 끊임없이 대중 잡고, 챙겨 가면 도달하는 것은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된 일심(一心)또는 일념(一念)의 상태입니다. 대종사께서는 삼학수행을 강조하며, 삼학 중 '정신수양(精神修養)'이 목적하는 바를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곧 수양의 목적을 '일심(또는 일념)'을 기르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심이라는 말을 처음에는 정신 집중의 의미로 쓰다가 이를 통해 구극(究極)의 삼매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수양의 의미로 까지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을 오롯하게 대중 잡고 챙겨가는 일심(일념)공부를 지속적으로 닦게 된다면 결국에는 삼매(三昧)를 증득하게 됩니다.


'집주(集注)'는 '집중'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일심이 마음 대중과 챙김이 확립된 상태(결과)를 나타낸다면 집주는 마음 대중과 챙김이 지속되는 상태(과정)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롯한 일심은 지속적인 집주의 과정이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러한 마음 대중과 일념 집중의 상태를 염불하는 방법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오로지 염불 일성에 '집주(필자 강조)'하되, 염불 귀절을 따라 그 일념을 챙겨서 일념과 음성이 같이 연속하게 하라.(정전 - 염불법 中)” 소태산 대종사는 염불과 좌선은 행법이 다를 뿐 그 지향하는 바와 공덕이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념을 집주하는 기법으로 염불뿐만 아니라 단전주선(丹田住禪)도 그 목적은 같습니다.


여기에서 주(住) 한다는 것은 다만 기운(氣運) 만을 주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뜻(意), 생각, 마음 등을 단전(丹田)에 주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일념(일심)의 집주는 염불과 좌선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때를 당하나 항상 일심을 놓지 않는 것(정산종사법어, 권도편 47장)”입니다.


마음을 일일(日日), 시시(時時), 처처(處處)에 챙기고 챙겨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 일 그 일에 일심만 얻도록 할 것이요.(대종경, 수행품2장)”라고 당부하거나 바느질과 약 달이는 등의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시라도 “그 책임을 잘 지키는 것이 완전한 일심이요 참다운 공부(대종경, 수행품 17장)”라고 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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